그해 11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대북 정책 조정관으로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을 지명했다고 통보했다. 이어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로 불린 페리 조정관의 ‘대북 정책 권고 보고서’도 공개됐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 장관은 미국 현직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그해 10월 북한을 방문했다.
1998년 6월 16일의 일이다. 당시 83세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감동적인 장면을 펼쳤다. 나, 김대중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이틀 만이었다.
그러나 소떼 방북 두 달 뒤 북한은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쐈다. 북한 최초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였다. 1550㎞를 날아간 뒤 일본 북동쪽 750㎞ 떨어진 태평양 공해 상에 떨어졌다.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북한이 하와이 등 미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능력이 있음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99년 3월 페리 조정관이 청와대를 찾아왔다. 페리는 ▶현상 유지 ▶매수 ▶북한 개혁 ▶북한 체제 전복 ▶상호 위협 감소를 위한 협상 등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한 뒤 ‘협상’을 현실성 있는 최적안으로 꼽았다.
나는 내심 고어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고어라면 클린턴의 노선을 계승할 것이라 봤다. 아쉽게도 부시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 그리고 퇴임을 한 달 앞둔 클린턴에게서 12월 21일 전화가 왔다. 당시 비밀에 부치자고 했던 대화 내용이다. 부시의 톤은 점점 강해졌다. 나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새해, 부시는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햇볕정책과 악의 축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미국과 북한은 수교 직전까지 갔다. 바로 그 시기에 부시 정권이 들어섰다. 내가 클린턴과 함께 추진한 대북 정책을 부시 정부가 들어와 뒤집어엎었다. 내 임기는 한계가 있고,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반전이나 개선을 꾀할 수 있는 방도가 막막했다. 대통령 재임 중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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