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수십 년간 버려진 국군 포로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중단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들이 있다. 이들은 탄광 등지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씨는 참전했던 전쟁터에서가 아닌 이후 54년간 북한의 탄광에서 일하던 중 손가락을 잃었다.
이씨는 한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중공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혔다. 그날은 1953년 6월 28일이었다. 강원도 화살머리고지 전투의 첫날이자, 3년간 이어졌던 잔혹한 싸움이 중단되기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 이씨를 포함한 3명만 살아남았을 뿐 소대 전원이 사망했다. 이씨와 다른 생존자 2명은 화물열차에 실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으로 향한다고 생각했지만, 열차는 북한의 아오지 탄광으로 향했다. 이씨가 남은 평생을 대부분 보낼 곳이었다.이후 그 어떠한 평화 협정도 체결되지 않았으며, 이에 포로들도 돌아올 수 없었다. 이씨처럼 북한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지난 수십 년간 소규모 충돌이 있긴 했으나, 대체로 북한과 한국 간 휴전은 유지됐고, 이는 역사상 최장기간 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남북한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지 70년이 됐으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한국전쟁이 끝이 난 게 아님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씨는 억류된 초반엔 탄광에서 쉬는 날도 없이 온종일 혹사당해야만 했다. 그 후엔 1주일 내내 북한의 사상을 공부해야만 했다. 그러던 1956년, 이씨와 다른 수감자들은 군 직함을 박탈당했으며, 북한에서 결혼해 사회에 동화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50년 넘게 석탄을 캐며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았던 이씨는 부상과 죽음의 망령이야말로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어느 날 이씨는 석탄 처리 기계에 손이 끼었고 그렇게 손가락을 잃었다. 그러나 메탄가스 폭발로 동료들이 목숨을 잃는 모습도 여러 차례 봐 왔기에 이정도 부상은 가벼워 보일 정도였다.“고향이 너무 그리웠어요. 특히 가족들이요. 심지어 짐승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살던 동굴로 돌아가잖아요.”한반도에선 대체로 평화 상태가 유지되고 있으나, 많은 전쟁포로와 그 가족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양측을 비난한다.북한 당국은 포로 8000명만을 석방한 이후 더 이상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거부했다.이씨는 이때 모든 희망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고향 땅을 다시 밟기 위해선 탈출밖에 없음을 깨달았다.당시 77세였던 이씨는 비밀리에 힘겹게 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했다. 강물이 목까지 차올라 넘실거렸다.그 외 수만 명은 그렇게 북한의 광산에 죽도록 내버려졌다. 이들의 자녀들은 살아 있으나, 지금껏 생존한 국군 포로는 소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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