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내현 | 뮤지션(록밴드 로큰롤라디오) 언젠가 봤던 니체 강독에서 강연자인 고병권 작가는 예수 그리스도에 가장 가까운 한국의 인물로 전태일을 꼽았다. 예수와 전태일의 삶은 매우 짧았다. 길지 않은 생에서 마지막 3, 4년 남짓한 시간은 철저하게 남을 향하고 약자들을 향
언젠가 봤던 니체 강독에서 강연자인 고병권 작가는 예수 그리스도에 가장 가까운 한국의 인물로 전태일을 꼽았다. 예수와 전태일의 삶은 매우 짧았다. 길지 않은 생에서 마지막 3, 4년 남짓한 시간은 철저하게 남을 향하고 약자들을 향했다. 평생을 희생한 이들도 많을진대 왜 예수와 전태일이 유독 특별해 보일까. 아마도 이들의 희생적 죽음이 가지는 대표성 때문일 것이다. 예수에게 인류의 구원은 자신의 사명과 다름없었다. 그는 죽음으로 자신에게 떠맡겨진 사명을 다 했고 임무를 완수했다.
54년 전 11월13일 전태일의 죽음은 모든 노동자를 대표한다.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비인간적인 착취와 폭력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전태일이 예수와 구분되는 점은 그에게는 어떠한 사명이나 책임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그에게 무거운 짐을 떠밀지 않았고, 누구도 그에게 대신 싸워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전태일은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이들의 짐을 떠안았고, 그 무거운 짐과 함께 산화했다. 그는 예수와 같은 신의 아들도 아니고 그저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자 젊디젊은 노동자였을 뿐이다.예수가 살아있던 2000년 전이나, 전태일이 살았던 20세기나, 2025년을 바라보는 현시점이나 ‘똑똑함’은 언제나 중요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사리에 밝고 셈에 정확한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자본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자산 증식의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똑똑해지기를 강요받는다.
현재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위원회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모금을 진행 중이다. ‘똑똑함’의 대명사라 불리는 의사들의 파업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극적으로 대비된다. 누군가는 도를 넘는 똑똑함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볼모로 삼고서 명분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누군가는 여전히 바보같이 이름 모를 남을 위해 선뜻 돈을 내놓는다. 셈에 밝은 ‘똑똑한’ 이들은 사람이 숫자로 보이고, 셈이 어두운 바보들은 어떻게든 숫자에서 온기를 찾아내고 사람 냄새를 맡아낸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똑똑함’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셈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있다. 숫자 몇개에 집착하는 가운데 나 스스로가, 그리고 나와 함께 이 땅에 사는 누군가가 사람임을 잊고, 사람이기에 당연히 느껴 마땅한 사랑과 연민을 잊고 있다. ‘똑똑함’이 단지 이런 거라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전태일이 마지막 순간까지 바보였던 이유가 그저 못 배우고 멍청해서가 아님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셈에 어두웠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사랑과 연민을 내려놓지 못했을 뿐이다. 셈의 관점에서 사랑과 연민은 절대 합리적일 수 없다. 셈의 관점에서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은 또 다른 바보짓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발 한번 디딜 일 없을 노동자 병원 건립에 선뜻 돈을 건네는 일이 어찌 합리적일 수 있나. 하지만 사랑은 적정량의 투입으로 예상 가능한 성과를 뽑아내는 투입 산출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 전태일 의료센터의 치료를 통해 일터로 복귀하고 일상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바보들은 그걸로 충분하다. 병원 벽에 이름 세 글자 새길 정도의 바보짓으로 누군가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완벽한 성과가 있을까. ‘똑똑한’ 사랑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사랑은 언제나 바보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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