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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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동학농민운동동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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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의 형사피고사건 심문 내용과 동학당, 거사, 전라도의 전투, 전주성 함락, 초토사 홍재희와의 교섭 등을 담고 있습니다.

전봉준 판결문은, 서해문집에서 펴낸 김흥식 선생의 국역본, 신아출판사에서 펴낸 최현식 선생의 국한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펴낸 국역본, 전문을 참고하여 필자가 다시 정리하였다. 제37호(第三十七號) 1895년 3월 29일 판결선고서원본(判決宣告書原本) 전라도 태인(泰仁) 산외면(山外面) 동곡(東谷) 거주(居住) 농업·평민 피고(被告) 전봉준 41세 판결선언서(判決宣言書) 위에 기재된 전봉준 에 대하여 형사피고사건(刑事被告事件)을 심문(審問)하여 본 즉, 피고는 동학당 이라 칭하는 비도(匪徒)의 거괴(巨魁)로 접주(接主)라고 불린다. 개국(開國) 501(1892)년 1월에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 처음 부임하여 자못 학정(虐政)을 자행함으로 그 지방 사람들이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해 11~ 12월쯤에 군수에게 가혹한 정치를 고쳐줄 것을 애통히 간청하였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모두 잡혀 옥에 갇혔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청원(請願)을 거듭하였으나 즉시 물리치고 터럭만큼도 효과가 없어 인민(人民)들이 매우 분하게 여겼다. 그러나 수천 명이 모여 장차 거사(擧事)하려 할 때 피고(被告) 또한 마침 그 무리에 들어갔고, 많은 사람이 원해 접주로서 주모자가 되었다. 작년 3월 상순(上旬)에 무리의 두령이 되어 그들을 인솔하여 고부 외촌(外村)에 있는 창고를 헐고 돈과 곡식을 꺼내어 남김없이 인민들에게 나누어 준 뒤 한두 곳에서 더 일을 벌이고 해산하였다. 그 후 안핵사(按覈使) 장흥부사 이용태가 고부로 들어와 먼저 일을 벌인 것이 모두 동학당의 소행이라 판단하고 동학수도(東學修道)하는 자들을 잡아들여 무참히 살육하였다. 이에 피고는 다시 동학도를 규합하여 모집하였는데, 응하지 않는 자는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자요, 의롭지 못한 자이니 반드시 벌을 주겠다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위협하여 4천여 명의 무리를 얻었다. 그들은 각자 소유하고 있던 흉기(凶器)를 가지고 그 지방에서 부유하게 사는 사람에게 양식을 거두어들인 다음 그해 4월 상순쯤에 피고가 직접 무리를 영솔(領率)하여 전라도(全羅道) 무장(茂長)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부, 태인, 원평, 금구 등지를 거쳐 갈 때 전라감영의 포군(砲軍) 만여 명이 동도(東徒)를 치러 온다는 말을 듣고 고부로 몰려갔다가 하루 밤낮을 싸운 뒤에 포군을 격파하고 전진하였다. 그리고 정읍,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을 거쳐 장성에 이른 그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 700여 명을 다시 격파하고 밤낮으로 행진(行陣)하여 4월 26일과 27일쯤 관군보다 먼저 전주성에 들어갔다. 그때 전라감사는 이미 도망친 뒤여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튿날 초토사(招討使) 홍재희(洪在羲)가 군사를 이끌고 전주성 아래까지 다가와 성밖에 커다란 대포를 설치하고 공격하기 시작하자 피고는 무리와 함께 응전(應戰)하여 예상보다 세게 관군을 괴롭혔다. 이에 초토사가 격문(檄文)을 지어 성 안으로 던지며, '피고 등의 소원을 들어줄 터이니 속히 해산하라'고 타일러 경계하자 피고 등이 27개 조목을 내걸고 상주(上奏)하기로 청원하였다. 1. 전운소(轉運所)를 혁파(革罷)할 것. 2. 국결(國結)을 더하지 말 것. 3. 보부상(褓負商)의 폐단(弊端)을 금할 것. 4. 전라도 내 환전(換錢)은 이전의 감사가 거두어 갔으니, 백성들에게 다시 징수하지 말 것. 5. 대동미(大同米)를 상납하기 전에 각 포구에서 잠상(潛商)들의 미곡(米穀) 무역을 금할 것. 6. 동포전(洞布錢)은 각 집마다 봄가을에 두 냥씩으로 정할 것. 7. 탐관오리(貪官汚吏)는 모두 파면시킬 것. 8. 위로 임금의 총명을 막아서 가리고, 벼슬과 직위를 팔며 국권을 농단하는 자들을 남김없이 축출할 것. 9. 각 군현의 수령들은 자기 관할지역 안에서 장례를 치르지 말고, 또한 논을 거래하지 말 것. 10. 논밭에 부과하는 조세는 예전과 같이 할 것. 11. 백성들의 각 집에 부과하는 여러 부역을 줄일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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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동학농민운동 동학당 거사 전라도 전주성 초토사 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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