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이 세상 일이라고 여길 수 없을 처참한 장면 야마모토_스미코 민병래 기자
다카시마다이산을 떠나 탄마치와 고가야 공원을 거쳐 오후 2시쯤 이날의 네 번째 답사 장소인 옛 아사노 조선소 앞에 도착했다. 모두 10분 안쪽 내에 있는 거리였으나 질의 응답이 많아선지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옛 조선소 터는 100년이 지난 까닭에 아예 흔적이 없었다. 항만도로는 반듯하게 뻗어 있었고 물류창고 같은 대형 건물이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닷가 바로 앞이어서 맞바람에 짙은 소금기가 풍겼고 한낮의 햇빛은 파도를 억누르고 있었다.
야마모토는"군부가 특히 요코스카에 뿌리를 둔 해군이 '조선인은 빨치산'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 적대감이 계엄 상황에서 자연스레 분출되어 군대의 학살을 부추기고 경찰과 자경단 또한 무차별 살해에 나서게끔 했다"고 분석했다. 조선인은 이처럼 치안의 대상으로 항상 감시를 받고 있었다. 유언비어가 있었기 때문에 정찰하러 다닌 것이 아니라 평소 조선인에 대해서 특별고등과가 눈을 번뜩이고 있었고. 그런 까닭에 마치 겨누고 있던 듯 한 곳에서 집단으로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야마모토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 우리 답사반은 아사노 조선소 앞 검푸른 바다에 국화꽃 한 송이씩을 던졌다. 먼바다 어디선가 100년 전 조선인의 영령이 손짓하는 듯하다. 영가라고 하던가? 원한이 많아 구천으로 가지 못해 떠도는 영혼을. 울부짖음과 아우성이 물마루를 타고 밀려오는 듯하다. 제대로 씻김굿을 해 그 한을 풀어 드려야 하는데 고작 국화꽃 한 송이로 시늉만 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야마모토 스미코의 선창으로 우리는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불렀다. ▲ 호쇼지의 ‘관동대지진 한국인 위령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1970년 9월 1일에 세웠다. ⓒ 민병래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아사노 조선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날 답사의 마지막 장소인 호쇼지로 향했다. 천년 고찰답게 입구 돌계단엔 양쪽으로 아름드리나무가 몇 길 높이로 솟아있었다. 이 절을 마지막 답사 장소로 정한 까닭은 가슴 아픈 사연이 서려 있어서다.
"1990년대부터 역사수정주의가 나타나면서 학살은 없었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조선인을 도운 일본인도 많았고, 일본인도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어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코웃음 쳤는데 일본 사회에서 이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었어요." 차 한잔을 다 마실 때쯤 나는 답사 시간에 채 못했던 질문을 쭈뼛거리며 던졌다. 2023년 관동대학살 백주기에 대한 가나가와현의 계획이 무엇인지? 또 백주기 이후는 어찌할 셈인지? 사실 이런 질문은 조심스러웠다. 한국에는 이 아픔을 기리는 자그마한 추도물 하나 없는 마당에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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