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사진) 박사가 1일 별세했다. 이 박사는 4·19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 있을 때인 1961년 11월 만 30세가 넘어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미망인이 된 부인 조혜자 여사는 지난 9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이 박사를 만난 이 전 대통령이 '그 다친 애들은 어떻게 됐어'라고 물으며 4·19 때 다친 학생들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는 “이인수 박사가 1일 오후 6시 53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영면하셨다”며 “고인은 63년간 한결같이 ‘아버님 선양’에 진력하셨다”고 밝혔다. 기념회에 따르면 이 박사는 유언으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들이 ‘정치인 지우기’에 골몰했단 점이 항상 마음 아팠다”며 “생전에 이승만기념관을 세우고 싶었지만 못다 해서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아버님의 평소 견해를 국민이 되새겨주셔서 다행이고 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는 세 명의 양아들이 있었다. 첫째 은수, 둘째 강석, 셋째가 이 박사다. 이 박사는 4·19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 있을 때인 1961년 11월 만 30세가 넘어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62년 말 하와이로 건너가 이 전 대통령 부부를 직접 만났다. 미망인이 된 부인 조혜자 여사는 지난 9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이 박사를 만난 이 전 대통령이 “그 다친 애들은 어떻게 됐어”라고 물으며 4·19 때 다친 학생들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이 박사 역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 현장에 직장인으로 동참했다고 한다. 고인은 9월 1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한 후 희생자와 유족에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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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묘지 찾아 사과했던 '이승만 양자' 이인수 박사, 1일 별세'대통령의 연세가 많으니 대학 졸업자였으면 하고, 이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생각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미혼이며 가정교육이 바른 집안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적합한 사람이 바로 이 박사였다고 한다. 이 박사는 양자가 된 후 모두 세 차례 하와이를 찾아 아버지 이 전 대통령을 모셨다. 4·19 혁명 희생자들과 화해를 위해서도 지속해서 노력했고, 지난 9월엔 대통령의 아들로서 63년 만에 처음으로 4·19 민주묘지를 참배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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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양자 이인수 박사 별세…'父 뜻처럼 北동포 자유 누리길'고인은 이 전 대통령이 4·19로 하야한 뒤 하와이에 체류하던 시절인 1961년 11월 만 30세의 나이에 양자로 입적됐다. 이 전 대통령이 고령(당시 86세)인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대학(고려대 경영학) 졸업자란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특히 이 박사는 양자 입적 뒤 이듬해인 1962년 12월 하와이로 건너가 이 전 대통령 부부를 직접 만났는데, 당시 4·19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일화가 남아있다. - 이승만,이인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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