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왼손잡이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들면 뒷면부터 펼쳐본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칭, 미러링, 도치 같은 관념에 매혹당했다는 수줍은 고백도 흥미롭다.
놀란을 영화계에 깊이 각인시킨 의 연출이 대표하듯 영화를 시간순으로 친절하게 늘어놓기보다 플롯을 쪼개고 쪼개, 마구 뒤섞어 놓는 비선형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것도 어쩌면 왼손잡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놀란 스스로가 밝힌 이런 개인적인 특징은 당연하지만 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대과거, 과거, 현재의 3가지 시간대를 넘나드는 비선형적 플롯을 뛰어난 장인의 솜씨를 발휘해 본인의 장기이자 특기인 편집이라는 특수효과로 조밀하게 이어 붙인 또 한편의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다.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역사에 대한 전기 영화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기본 시간대, 1954년에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1959년에 있었던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청문회의 3가지 시간대로 주로 진행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원작인 만큼 방대한 사건이 흘러가기 때문에 몇 장면을 집중해야 한다.
이는 10분 전 일을 기억 못 하는 선행적 기억상실증을 보완하기 위해 자기 몸에 문신을 새기고, 자경대가 되어 도시의 악당들을 소탕하고, 아내를 구하기 위해 기억의 심연에 접근하는 등 자신이 구원이라 믿었던 행동이 사실은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는 놀란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오펜하이머에겐 자기 구원이란 착각의 요소가 물리학이자 원자폭탄 개발이었을 뿐이다.종전 이후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은 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 반복되는 장면이다. 1940년 후반에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은 스트로스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하는 걸 멀리서 지켜본다. 사실상 관객의 시점과 같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는데, 아인슈타인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난다. 이제 진실을 택하는 건 스트로스의 몫이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자신을 험담했다고 믿고 앙심을 품는다.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다. 관측하는 순간 형태가 결정된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관측도 빛과 다르지 않다.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반핵운동가는 모순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도 오펜하이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스트로스나 관객의 시점이 아니라 아인슈타인과의 대화라는 스스로의 관측을 거쳐 불확정성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형태를 결정한 것이다. 마치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영원한 형벌을 감수한 것처럼 원자폭탄을 개발한 죗값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말이다.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오프닝과 엔딩에 배치된 두 번의 결정적 장면만 있었다면 굳이 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놀란의 영화에서 주인공의 순교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에서 조커에 의해 투페이스로 타락했던 하비 덴트를 청렴한 백기사로 남기고 대신 오명을 뒤집어쓴 배트맨의 잠적과는 완전히 일치한다. 배트맨의 결정이 온전한 픽션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손에 피를 묻힌 오펜하이머보다 윤리적으로 거리낄 게 없는 부분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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