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샘의 맥주실록] 수도원을 살린 오르발 트라피스트 맥주 2부
유럽의 많은 수도원들이 프랑스혁명 시기에 파괴됐다. 왕과 성직자의 권력을 허무는 과정에서 수도원은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왕의 목은 단두대로 보내졌고, 성직자들의 목은 교회와 수도원 재산 몰수와 함께 잘려졌다. 유럽 중세를 지탱해 온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혁명으로 희석됐다. 교회와 수도원 파괴가 민중의 저항 없이 진행되었다는 건, 그들이 지지를 받지 못했던 기득권 세력이었음을 의미했다. 권력을 위해 복속하는 종교는 존속하기 힘들다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었다.
폐허의 지하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된 전시관이었다. 밝은 복도에서는 과거 사용했던 물품들을 볼 수 있었다. 성배, 십자가, 성경책, 약제 서적, 금 쟁반 그리고 성인의 그림들은 과거 화려했던 오르발 수도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려한 유물들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 프랑스혁명 정부와 나폴레옹이 수도원 재산을 몰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수도원의 검은 상흔은 세상을 바꾸고자 한 민중의 염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불탄 건물과 잡초만 무성하던 땅에 다시 역사를 흐르게 한 주인공은 드 하렌네 가문이었다. 1926년 이들은 폐허가 오르발 수도원을 매입해서 트라피스트회에 기부했다. 수도원 재건이라는 중책을 맡은 인물은 수도사인 마리 알베르트 반 데르 크루이센이었다. 그는 10년간 오르발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헌신했다. 마침내 1936년 오르발은 사라졌던 수도원의 지위를 되찾았고 1948년 9월 8일 봉헌을 통해 부활을 알렸다.
흥미로운 건, 바로 다음 과정이다. 오르발은 병에서 2차 발효를 진행한다. 이때 사용하는 효모가 특이하다. 주인공은 야생 효모인 브레타노마이세스다. 브렛 효모라고도 불리는 이 미생물은 인간에게 길들지 않은 효모다. 보통 맥주에서 이 녀석이 뿜는 향이 감지되면 오염된 것으로 간주한다. 외양간, 말안장으로 표현되는 이 향은 극단적인 정향 또는 페놀 향에 가깝다. 람빅 같은 특별한 맥주를 제외하고 모두 이취로 여겨진다. 전통적이고 고답적일 수 있는 수도원 맥주에 창조적 파괴를 꾀한 매력은 오르발 맥주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여러 병의 오르발을 구매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향미를 즐긴다. 매년 오르발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공식적인 상미 기한이 5년인 이유다. 오르발 맥주는 수도원 기념품 매장에서 6병 들이 박스로 살 수 있다. 한 박스를 사면 6년 동안 매년 달라지는 오르발의 모습을 맛볼 수 있다는 의미다. 수도원에서 바로 출시된 맥주로 수직 테이스팅을 할 수 있으니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르발 수도원에 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오르발 베르를 마시기 위해서다.
레스토랑에서는 3종류 맥주 외에 숙성도가 다른 3종류의 치즈도 함께 먹을 수 있다. 더구나 맥주 150ml에 치즈를 더한 세트가 8.9유로에 불과하니, 이보다 좋은 대안은 없다. 주문을 마치자, 곧 나무 플레이트에 정갈하게 세팅된 맥주와 치즈가 나왔다. 3종류의 오르발은 색깔부터 차이가 났다. 숙성이 되지 않은 오르발 베르는 가장 밝은색을 띠었다. 그리고 숙성도에 따라 색은 점점 짙어졌다. 투명도는 반대였다. 숙성이 될수록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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