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3]
네, 너무 좁았던 거죠. 일행 중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뒤를 닦으려고 하니 팔이 벽에 닿아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샤워 부스는 세워 놓은 관처럼 몸이 꽉 끼었고요. 그나마 발가벗고 들어가니 들어갈 수 있었지요. 씨알재단이 인색하고 물색없어서 그런 숙소를 잡았던 건 아닙니다. 추모제 준비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그랬습니다. 6661명의 넋을 8명이 달래야 하는 상황이니. 게다가 일본말도 서툴지요. 척척 이동시켜줄 차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행사장 인근에 숙소를 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도 일반 주택가라 선택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요. 일행 중 먼저 일본에 가셨던 분이 추모제 준비에만도 혼자 일이 벅찬데, 일행들 숙소까지 세밀히 살펴 구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나리타공항에 내려 경유지 케이세이 우에노역에서 허겁지겁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야히로역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오후 12~ 1시.
우리가 맨 먼저 가야할 곳은 야히로역 바로 뒷편의 상설추모공간 '봉선화집'입니다. 그래봤자 주택가에 마련된 박스 형태의 작은 사무실과 손바닥만한 마당이 전부인 곳입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잔혹한 학살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추모를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몇 십년째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이 단체가 있었기에 학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씨알재단의 금번 100년만의 제사도 지낼 수 있었던 것이죠. 나루터나 항구처럼 모든 추모행사는 이곳에 일단 정박하면서 시작되니까요. 베이스캠프처럼.조촐한 추모비 앞에 놓인 참이슬 소주와 신라면이 도드라져 보이네요. 재일동포들이 다녀간 것일까요? 일본산 우롱차도 놓여져 있고요. 대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추모객들이 줄을 잇습니다. 모두 일본사람들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좁은 골목길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습니다. 날은 또 왜 그렇게 무덥던지요. 제 기억 속 가장 더운 날로 남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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