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지만, 한동안 한국 관광을 독려하는 캠페인 문구로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사용된 적이 있었다. 10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빠르게 개발과 발전, 성장을 일구어낸 한국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다이나믹’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역동적’인 상황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확립하거나 다질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따라가기 바쁠 수도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는 모습
이기도 하다. 제조업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산업 전반이 세계적인 기업들을 여럿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주간 노동시간이나 노조 결성율을 비롯한 노동권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2014년부터 국제노총이 매기는 ‘글로벌 노동권 지수’에서 한국이 매년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차지하는 것은 그 어두운 단면이다.
그러나 그 빠른 시간 동안 괄목할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 대중문화는 경제적인 발전 수준 만큼 영역 내부의 작동 구조도 그만큼 성숙했는가. 앞서 언급한 국제노총의 글로벌 노동권 지수와 다르게, 각 국가별 문화 영역의 상황을 쉽게 국제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당사자 개개인의 노동자성 인식을 지니는 것이 용이한 일반적인 산업 영역과 달리, 문화 영역의 경우 자신을 ‘창작자’로서는 인식해도 ‘창작 노동자’로 인식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측면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 참작 요소’에도 불구하고 2022년 한국 문화 영역에서 등장한 뉴스들은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에 수많은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모습은 점차 심해지는 ‘양극화’의 현상이다. 무수한 문화‧여가 활동 중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영화’에서 이러한 모습이 특히 두드러졌다.
물론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문화 산업은 ‘시장의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마다 시장의 크기나 지속적으로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기꺼이 돈을 쓰는 ‘적극적인 소비자’의 규모 등에 차이가 있을 뿐 고수익을 버는 창작자나 작품은 소수이며, 다수의 창작자나 작품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어려우며 사라지기도 쉽다. 그 자본주의적 격차를 조금이라도 메꿔주는 것이 바로 정부나 공립적인 차원의 ‘문화 정책’이다. 다른 민간 자본 못지 않은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의지만 있다면 자본주의적인 흐름이 낳는 격차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통로를 고민할 수도 있다.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부의 문화 정책은 ‘지금 당장 돈을 잘 버는’ 문화 상품에 초점이 단단히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