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나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는 것'
아내는 내게 팔짱을 끼고 아이들은 옆에서 웃고 떠들고. 분명 쇼핑에 나선 다정한 가족처럼 보이겠지만, 눈썰미가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의아해하거나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웃음이 가득한 세 사람의 얼굴과는 달리 내 얼굴엔 웃음 대신 심술만이 가득했으니까.조금 망설이는 아이들과는 달리 아내의 답은 간단명료했다.어이도 없고, 기분도 언짢았지만, 아내에게서 며칠 전부터 사야 할 게 많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뭐라 따질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차라리 그냥 집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말하려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나간 김에 외식을 하자며 굳이 나까지 끌고 나왔다."아, 그래요. 그게 좋겠네. 그럼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스마트폰으로 책이나 들을까 싶어서 주머니를 뒤지는데 이어폰이 없었다. 낭패였다. 이것저것 살 것도 많았고 거기다가 장단이 잘 맞는 셋이 모였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나 혼자 버텨야 할텐데, 정말 난감했다.
상대방이 뭐라 변명도 할 새 없이 정말 속사포처럼 쏘아 댔다. 남자는 미안하단 말만 반복할 뿐 뭐라 제대로 말도 못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너무한다 싶으면서도 젊음이 살짝 부러웠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분명 차분했고, 침착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서는 어떤 여유도 품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늘한 기운에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 말투를 따라 하고 있었다.얼굴에만 표정이 있는 게 아니다. 말에도 표정이 있다. 음절 하나하나가 이어져 어울리는 말의 가락, 우리가 '말투'라고 부르는 이것엔 말하는 이의 감정이 들어 있다. 어색한 표정이나 말투에도, 비록 거짓일지라도 감정이 들어 있는 건 분명하다.1인 세대가 증가하고, 혼술이니 혼밥이니 혼자 하는 게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던가. 혼자만의 여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과 혼자 동떨어져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른 얘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든 어울려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꼭 필요하다. 반면 관심이 없다면 상대는 내 눈에 보이는 물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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