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의 성장 이야기 마을이 도시로]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 확장하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삼천포항이 열리고 일본 어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올 무렵, 삼천포는 반농반어의 마을이었다. 반농반어라 해도 바닷가 주민들에게만 해당할 뿐 바다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어업보다는 농사가 살림의 더 큰 축이었다. 그만큼 어업 인구가 적었고, 생산성이 낮았다.
일제강점기 경남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1910년 말 기준으로 수남면에는 2명, 문선면에는 16명의 일본인 어업인이 있었다. 수남면은 지금의 신수도, 늑도, 마도와 같은 섬과 동금동, 서금동, 선지동, 하향동을 포함한다. 문선면에는 동동과 서동, 삼천포가 든다. 여기서 말하는 삼천포는 포구에 제한된 개념이다. 일본인 학자 요시다 게이치는 그가 1954년에 낸 책 에서"1921년 말에는 호수 37호, 건착망 3통, 어선 15척, 경영자 34인, 연간 생산이 50~60만 관이나 되어, 당시 조선 내의 이주어촌 중 1인당 최고의 이윤을 올렸다"라고 에히메촌에 관해 썼다. 에히메촌의 성공 비결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930년에 행정에서 작성한 이라는 자료를 보면 일본인 수산업 종사자는 사천군을 통틀어 123명이다. 이 가운데 120명이 전업, 나머지 3명은 겸업이다. 같은 자료에서 한국인 수산업 전업자와 겸업자는 각각 2,162명에 727명이다. 지역 범위가 달라서 1910년과 1930년 수치를 직접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수산업자 중 일본인 비율은 공교롭게도 4% 남짓으로 비슷하다. 1960~1980년대에 삼천포의 경제 호황기를 가져다준 '삼천포 쥐포'는 이때부터 잉태했을 가능성이 크다. 삼천포에서 어묵 사업이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로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수산 가공 사업의 발달은 얼음 생산 필요성으로 이어져 훗날 냉동·냉장 업체의 성장을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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