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방에 책과 옷이 쌓여간다. 사용하지 않는 가구들과 컴퓨터 위로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방에 들어온다. 방의 구석들을 활용하고 정리하며 버텨보지만 한계가 온다. 한때 가장 적합하다고 믿었던 방 구조가 지금은 아니다. 결국 가구들을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5월28일 서울 관악구 서원동주민센터 앞에 사전투표소 안내 펼침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방에 책과 옷이 쌓여간다. 사용하지 않는 가구들과 컴퓨터 위로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방에 들어온다. 방의 구석들을 활용하고 정리하며 버텨보지만 한계가 온다. 한때 가장 적합하다고 믿었던 방 구조가 지금은 아니다. 결국 가구들을 포함한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놓고, 필요 없는 것을 버린다.
정리가 시작되니 온 집에 먼지가 가득하고, 가족들은 불편하다. 변화는 항상 쉽지 않다. 현재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를 공언하면, 우리는 기대를 보낸다. 하지만 막상 변화가 시작되면 불편하다. 익숙함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변화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면 불편이 불만이 된다. 기대했던 이들은 변화가 시작되면 바로 더 나은 결과를 경험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경우 사실이 아니다. 개혁 직후에는 손해나 갈등을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과정이 길어지면 변화에 대한 ‘피로감’이 들 수도 있다.우리나라의 대통령처럼 임기가 정해져 있으면 마음은 더 급해진다. 5년이라는 시간 중 실질적 힘이 가장 세다고 믿는 첫해에 변화의 어젠다들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항상 간과하는 것이 있다. 변화의 혜택은 오늘부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사를 시작했는데 오늘 밤 깨끗한 집에서 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결국 1년의 개혁 노력은 남은 4년 동안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방향이 문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관련 정책들을 오늘 시행하면 오늘부터 성과가 생산될 것처럼 가정했던 것 같다. 경제성장률도 소득분배도 일자리에도 긍정적일 것이라 가정했고, 또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관리하지 못했고, 정책의 세밀함은 부족했다. 지표에 일희일비하고 단기에 지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들에 대한 유혹이 컸다. 결국 유산을 남겼지만 사회경제체제의 거대한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혁이 시작되자마자 일부 시민과 언론은 이미 이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개혁보다 익숙한 이 방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득세하기도 했다. 방 하나를 정리해도 며칠이 걸리는데, 몇십년 굳어진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체질 개선이 단기간에 완성되어 열매를 생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서구 국가들이 거대 개혁을 성공시킨 사례에는 단기적 혼란과 손해를 감내할 수 있는 정치적 조정체계와 시민들의 인내가 있었다. 노사정의 합의로 단기간의 내리막길을 함께 감수하거나 정치의 결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신뢰가 잠시의 어려움에 대해 저항하기보다는 믿음을 선택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에 대응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노동시장의 변화를 만들어냈다.6월3일,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다. 성장도, 분배도, 지역도, 관계와 돌봄도 위기의 징후가 짙은 대한민국이다. 이 방은 먼지 좀 닦고, 청소 조금 해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안정된 정치 조정체계나 신뢰와 인내로 정치를 기다려주는 시민의 경험도 약하다. 오히려 무엇을 말하든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력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방향을 틀어서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정치 조정체계가 허약한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시민의 인내와 노력이다. 새 정부가 ‘얼마나 잘하는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바라보는 정치나 정책 소비자가 되지 말자. 정부만 노력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마술은 없다. 방향이 맞는다면, 신뢰하고 인내하며 동료 시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나의 귀한 소득을 조금씩 내놔야 할 수 있고, 불편한 의견에 타협해야 할 수도 있다. 새 정부는 오늘의 변화가 당장에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조급한 정치적 수사 대신에 차분하고 끈기 있게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시기이니 함께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고, 고통이 뒤따를 수 있음을 설득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내 덕이요’라는 사람 대신에 ‘내 탓이요’라는 성찰적이고 소통에 능한 지도자들이 새 정부를 구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책의 세밀함은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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