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시체만 382구, 제주공항 자리에서 가장 많이 죽었다 제주4.3 윤태옥 기자
한라산 정상, 오름, 파란 바다, 검은 돌 해변, 어선들의 불빛, 돌고래와 가마우지... 제주는 여행천국이지만 제주의 아름다움을 아무리 상찬한다고 해도 깊고 넓게 깔린 제주4.3을 암막처럼 가리진 못한다. 지난밤의 역사이고 오늘 아침의 상처다.
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백비를 만난다.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비가 눕혀 있다. 제주4.3은 사건 반란 항쟁 등등 여러 가지 명칭이 불리곤 하지만 공식명칭은 제주4.3사건이다. 정명이 되지 않은 것에 서운한 사람이 많지만 각자의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효과도 있다. 백비를 지나면 제주4.3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후의 강요된 침묵과 진상규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잘 보여준다. 찬찬히 보자면 한 시간도 부족하다. 4.3기념공원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면 조천, 물빛이 아름다운 함덕해수욕장이 나온다. 그 동쪽에 서우봉이 있고, 서우봉 바닷가로 몬주기알이 있다. 선흘리 사람들이 집단으로 총살을 당했다. 학살은 정부수립 이후의 초토화 작전과 한국전쟁 직후의 예비검속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발생했다.
경찰과 행정당국은 유족들을 강박해 45일 만에 화장한 뒤 바다에 뿌리게 했다. 학살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과 이별하는 절차도 억누르고, 기억하고 발언하는 것 자체를 핍박한 것이다. 다랑쉬굴입구를 콘크리트로 봉해버렸으나 공기가 통하는 숨골을 더듬어 볼 수는 있다. 다랑쉬굴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성산 일출봉이다. 일출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광치기해변의 북쪽 끝에 터진목이 있다. 성산읍 사람들이 학살당한 곳이고 지금은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산방산을 지나서 백조일손묘역을 찾아갈 수 있다. 조상은 서로 다르지만 한곳에서 뒤엉켜 죽임을 당해 하나의 자손이 됐다는 뜻이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대한민국 정부는 소위 사상이 불온한 자들을 예비검속으로 잡아들였다. 모슬포에서는 8월 20일 새벽에 200여 명을 총살했다. 유족들이 시신을 겨우 수습한 것은 1956년 5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죽임을 당한 모슬포 사람들을 같은 곳에 안장한 것이다.
영모원은 중산간 지역에 있다. 하귀리 주민들이 독립운동가와 군경과 4.3희생자를 한 곳에서 추모할 수 있도록 세운 합동 위령단이다. 애국절사영현비 호국영령충의비 4.3희생자위령비가 나란히 서있다. 4.3에서 사후의 화해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죽은 자들에게도 화해가 성립하는 것인지, 소심한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제주비행장 바로 바깥에 있는 도두봉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제주공항 자리에서 가장 많은 학살이 벌어졌다. 발굴된 것만 382구, 아직도 활주로 밑에 유해가 깔려 있을 것이다. 제주공항 북쪽 경계 바로 바깥에도 예비검속자 위령비가 있다. 제주항 여객터미널 건너편에는 주정공장 옛터가 있다. 학살 전에 집단으로 수용하던 시설이었다. 제주항국제여객터미널 동쪽의 별도봉 바닷가에는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있다. 1949년 1월 젊은이 수십 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전부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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