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신작로에 이발사 박씨가 마을에 등장한 이야기. 박씨는 친구의 아들을 데려와 자신의 아들로 삼았고, 한 여자가 네 아이를 데리고 이 마을에 정착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파트 5층 높이의 미루나무가 머쓱히 서 있던 신작로 에 이발사 박씨가 마을에 등장한 건 1970년대 말. 다섯 살쯤 먹은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사내아이와 함께였다. 버젓한 버스표지판도 없던 그곳에 그들을 내려준 버스는 알감자 같은 흙먼지를 매달고 거칠게 내달리다 소실점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과 충북 옥천 사이에 지빠귀 둥지처럼 들어앉은 마을을 두 쪽으로 가르며 관통하던 신작로. 박씨는 신작로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을 얻어 이발관을 냈다. 농사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마을사람들의 아들들이 도시로, 중동으로 돈을 벌러 떠나던 시절이었다. 신작로에는 제법 규모가 큰 방앗간과 가게가 꼭 붙어있었다. 방앗간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은 보름달처럼 노란 양철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러 가게로 향하곤 했다. 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까지 나가 이발하던 사내들은 제법 버젓한 박씨의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수염을 다듬었다. 아이들도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얼마 후 사내아이가 박씨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에 의하면, 군대시절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병이 들자 아내가 아들을 떼놓고 집을 나갔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안 친구는 박씨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총각이던 이발사 박씨는 친구의 아들을 데려와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아들로 삼았다. 30대 초반으로 말수가 적고 순한 박씨는 훤칠하고 인물이 좋았다. 흰 가운을 입고 신작로에 나와 서 있는 모습은 제법 근사했다.가을이 되고 방앗간의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참새들이 방앗간 양철지붕과 전선줄에 빼곡히 내려앉았다. 어느 날 신작로에 웬 여자가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데리고 나타났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머리를 파마하고, 부지깽이처럼 마른 여자는 방 하나를 얻어 아이 넷과 마을에 정착했다. 여자는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함구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넷이나 달고 친척 하나 없는 낯선 마을로 흘러들었는지 또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경상도 출신이라는 것 말고 여자에 대해 짐작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씨에게 아내가 없다는 걸, 박씨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여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발관으로 향했다. 박씨는 여자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네 아이를 조용히 제 식구로 받아들였다. 둘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부부로 살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이발사와 여자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자, 박씨가 불임이라는 소문이 잠깐 마을에 돌기도 했다.눈 깜짝할 새 50여년이 흐르고 ‘마음교차로’라는 표지판이 신작로에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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