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효창공원 재구조화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국민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항일독립운동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묻는 질문의 1, 2, 3순위 응답을 합한 결과, 응답자들은 위 세 명의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한 역사는 1946년 7월 6일로 거슬러 오른다. 지금의 삼의사 묘역이 이 날 조성됐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실 자리도 함께 마련해 두었다. 해방 후 환국한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조성한 첫 번째 순국선열 묘역이었다. 관련 내용을 보도한 1946년 7월 7일 자 기사"祖國光復에 바친 세血祭"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임기 동안 수차례 이곳을 찾아 참배하는 등 효창공원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2019년 2월 26일 국무회의를 효창공원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한 것이 대표적이다.전쟁기간을 제외하고 공공청사가 아닌 곳에서 국무회의가 열린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아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근린공원 수준에서 관리 중이던 효창공원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효창운동장은 1960년 10월 열린 제2회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어졌다. 한국이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며 다음 대회 개최권을 획득한 데 따른 조치였다.한국 축구의 영광을 품은 곳이지만 '순국선열 묘역 앞'이라는 입지로 꾸준히 논란을 야기했고 이는 건립을 추진하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기사 작성 시기인 1956년 6월은, 제 1회 아시안컵이 열리기 3개월 전이었다.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차기 대회 개최권을 얻기도 전에 운동장 건립 시도가 있었단 의미다. 운동장 건립 시도의 전모가 밝혀진 건 1960년 4월의 혁명이 지난 후였다.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겼다. 이제는 효창공원선열묘소를 없애버리려던 음모 내용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첫째 4289년 5월 9일 자로 경무대의 이원희 비서관이 내무 재무 국방 농림의 4장관에게 내린 특명지시문이요. 다시 농림장관이 서울시장에게 사본을 붙여 지시한 공문이 있다. 임흥순 시장은 일제강점기 동민회, 조선임전보국단 등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일제 태평양전쟁 당시 놋그릇을 모아 일제 해군무관부에 헌납하고 청년들에게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학생 급속정신운동'을 전개하는 등 명백한 반민족행위를 자행했다.
이에 효창공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문재인 정부였지만, '효창운동장 입지' 문제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효창공원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추진된 안동 임청각 복원 사례에 비추어 보면 오류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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