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후배가 최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댁에 들렀다가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그렇듯 엄마가 저를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셨어요. 그 전에는 똑같이 나란히 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저를 못 따라오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짜증을 냈지요. 그런데 이젠
“엄마 댁에 들렀다가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그렇듯 엄마가 저를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셨어요. 그 전에는 똑같이 나란히 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저를 못 따라오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짜증을 냈지요. 그런데 이젠 알아요. 늙으면 느려진다는걸.”
그러면서 또 이야기합니다. “출근 시간에 버스 놓칠세라 젊은 사람들이 막 뛰어오는데, 한 할머니가 못 뛰시는 거예요. 버스 기사님이 기다려주시면서 ‘아이고, 덥죠?’라고 했어요. 버스에 탄 젊은이들은 ‘빨리 출근해야 되는데’ 하는 표정이에요.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도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늦냐’면서 구박할까 싶더라고요.”늙으면 느려지고 기운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 경우에는 은퇴에 즈음해 노화를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의 여기저기가 과거 같지 않은 거지요. 그러면서 지리산, 설악산 종주 같은 것은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저 스스로도 체력과 에너지가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몇해 전, 지금까지와는 달리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은퇴 뒤에 맡고 있던 사외이사도 초빙교수직도 모두 사임하고 일없이 조용히 지낼 때였지요. 모처럼 큰맘 먹고 미국에 사는 딸네 집에 갔었습니다.
일단 노화를 인식하게 되면서 내가 느려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에너지 레벨이 전과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속도를 줄여야만 내가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속도보다는 방향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그렇게 느려짐과 의식적으로 가까워지니 빠르게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습니다. 오래전에는 제주도 여행을 가면 승용차로 관광 명소에 들렀다가 사진 찍고 또 다음 장소로 가곤 했었지요. 그 뒤엔 한라산만 올라갔다가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해 전 제주올레길을 걷게 된 이후부터는 느리게 두 발로 걸으며 풍광과 마을과 사람들을 보고 또 들으면서 제주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접하게 되었습니다.사실 늙음과 상관없이 젊었을 때부터 시시때때로 기회를 만들어 느림과 좀 친해지면 삶이 좀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노화로 에너지 레벨이 낮아졌다고 해서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열정이 있습니다. 그 열정을 계속 불사르되 젊을 때와는 달리 영역을 줄여서 선택과 집중을 하니 과거의 기준으로 볼 때는 심심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심심하게 지낸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무료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칩거하거나 삶에 무관심해진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에 마음이 가고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 일을 열정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내가 드러나고 빛이 나고 돈이나 지위, 혹은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 자체를 즐기고, 함께 일하는 후배들이 나로 인해서 잘되는 것을 보면 즐거워지고 행복해집니다. 내 마음이 가는 일들만 하고,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는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삶을 나누는 것이지요. 젊었을 때와 달리 남과 비교도 거의 하지 않게 됩니다. 심심하면서도 제법 즐겁고 편안한 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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