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16명 소녀들을 방화범으로 만들었나 꼬꼬무 일반인수용시설 인권유린 경기기술학원화재 이준목 기자
세상에서 ‘문제아’로 취급 당하며 외면받았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오랜 기간 동안 교육과 교화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강압적인 인권유린을 당해야 했다.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에 위치했던 경기여자기술학원은 당시 가출청소년이나 고아 등을 수용하고 직업훈련을 시켜주는 일반인 수용 시설로, 경기도청 산하에 배속되어 운영되는 기관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출청소년 단속반, 청소년 선도위원회 등의 기구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길거리에서 불량학생이나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당사자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잡아서 끌고오는 경우도 많았다.기술학원에는 가출을 하거나 사고를 쳐서 온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다. 1995년 당시 학원의 원생 숫자는 138명에 이르렀고 이 중 대부분은 10대 이하의 미성년자였고, 가장 최연소인 13세 이하도 있었다.하지만 경기여자기술학원에는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원생들은 쇠창살과 둘러싸인 감옥같은 시설 내에서 자유 없이 철저한 통제를 받으며 수시로 폭언과 구타에 시달려야 했다.
해당 직원은 화재가 나자 2층의 문을 개방하고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패닉에 빠져 화장실에 몰려있던 아이들은 문이 잠깐 개방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2층 사감이 빠져나간 직후 문이 다시 잠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수사에도 2층의 문이 다시 잠긴 이유에 대해서는 고의인지 우연인지 끝내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했다.충격적이고 슬픈 뒷이야기가 드러났다. 사고 당시 1층에서 탈출한 원생들은 몽둥이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청원 경찰들과 마주쳐야했다. 청원 경찰들은 아이들을 구조하는 것보다 밖으로 탈출하지 못호도록 통제하는 것만 신경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참사 직후 학원 시설은 폐쇄됐다. 방화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법정에 서게 된 아이들은 친구를 죽인 죄책감에 눈물을 쏟았다. 세상의 비난과 책임은 모두 아이들에게 쏠렸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던 16명의 아이들을 위해 유일하게 나서준 것은 김칠준 변호사였다.그는 법정에서는 “피고인들은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자녀들일 뿐이다. 단지 공부를 못해서, 가정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것만으로 특별한 아이들이라 재단할 수 없다”고 변호했다.이어 “정부는 말로만 대책을 세우며 이들을 격리시켰다. 가족과 사회도 당연한 이들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겼다. 수용시설에 맡겼다는 것만으로 부모 일을 다했다는 부모들의 책임, 주입식 교육을 강요한 경기기술학원의 책임, 대형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별다른 책임이 없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고 일갈하며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어른들의 오류를 함께 평가하는 재판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