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미스롯데를 꿈꾼 17살, 라이터 공장에 취직하다 그곳에 노동조합이 있었다 거기서 전 국회의원 심상정씨를 만났다. 나보다 언니였는데, 스무 살 내 눈에는 굉장히 야무지고 당차 보였다. 당시에 대학교를 휴학하고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나는 언니를 잘 따랐다. 그 언니(심상정씨)가 뒤에서 지...
거기서 전 국회의원 심상정씨를 만났다. 나보다 언니였는데, 스무 살 내 눈에는 굉장히 야무지고 당차 보였다. 당시에 대학교를 휴학하고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나는 언니를 잘 따랐다. 그 언니가 뒤에서 지도를 잘 해줘서 덕분에 나는 노조 운영위원 역할을 맡아 잘 해낼 수 있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을 때는 우리도 연대를 갔다. 우리는 대우어패럴에 빵과 생리대를 창문 너머로 던져주기도 했다. 내 나이 23살에 난생처음 겪은 파업, 우리 사업장에서도 파업을 하자 청바지 입은 백골단이 각목을 들고 공장으로 몰려들어 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 길로 집으로 도망 왔다. 나중에 들으니 노조 간부들은 연행되어 난지도까지 끌려갔다고 했다. 그때 도망 나온 이후로 남성전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노조를 하던 그 시기에는 정말 이후로도 경험하지 못 한 것들을 겪었다.남편과는 10년을 연애하고 29살에 결혼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대학생이었고, 내가 자주 가는 음악다방에서 DJ를 하고 있었다. 잘생긴 DJ가 내 신청곡을 꼬박 틀어주니 마음이 갔다. 남편과 연애할 때는 남편에게 노조활동을 하며 배웠던 데모송도 많이 불러줬다. 그때는 한 남자를 알면 결혼까지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에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 폭행이 세 번 정도 반복된 뒤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할 때"위자료 안 받아도 좋으니 아이는 내가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 남편은 바로 재혼해서 가정을 이뤘고, 양육비는 받지 못했다. 남편이 내 앞으로 진 빚도 고스란히 떠안았다. 나는 남편을 정말 좋아했다. 남편이 없으면 못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혼을 하고 나니 전혀 다른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너무너무 자유롭고 행복했다. 늘 나를 괴롭히던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딸과 둘이 잘 살아가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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