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방은요 │ 읽을마음
경기 광명에 위치한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조용한 서점에 ‘딸랑’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들어온다. 창문 없는 책방의 유일한 문이 열리면서 나는 도어벨 소리다. 책방골목과 책방 사이의 분리된 공간이 잠시 하나가 된다. 일층이지만 문턱을 만든 낯선 공간에 용기 내어 들어온, 한 손님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다. 문이 닫히고, 다시 분주한 골목과 책방은 서로 다른 공간이 된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손님은 벽면 가득히 꽂힌 수많은 책 사이에서 자신의 책을 찾는다. 제목도 작가도 쓰여 있지 않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한 권의 책을 꺼내서 책에 적힌 날짜를 바라본다. 그 날짜는 그의 생일이다. 그리고 그 책을 쓴 작가의 생일이다. 같은 날짜가 적힌 책이 여러 권이 있다. 서가에서 모두 꺼내 책표지를 본다. 앞면엔 책 속의 문장이 쓰여 있고, 뒷면엔 책에 대한 힌트 키워드가 담겨 있다.
포장비를 따로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포장비를 최소화하고 내 인건비를 포기하고서라도 책을 조금 더 팔고 싶다. 작가님들과 출판사들이 이 나라에서 책밥 먹는 건 무리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내 영역에서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연 책방이기 때문이다. 사실 감사할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어야 했던 지난 시간에, 나는 포장할 일 없이 마음껏 책을 읽으면서 ‘울면서 책 포장하는 호사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가끔씩 슬슬 울어야 하나 고민도 하게 됐으니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한다. 집 앞 슈퍼 사장님은 내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같은 속도로 어슬렁어슬렁 야채를 나르고, 옆집 라멘집 사장님은 문 연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육수를 끓이고, 앞집 이자카야 사장님은 새벽같이 나가 횟감을 받아 오고 아이들 등원을 시킨다. 서점도 장사하는 곳이니 그만큼 부지런해야 하는 게 사실 마땅하다. 잠시 눈을 들어 책방 문을 바라본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책&생각] 당신은 일을 사랑하십니까? 왜죠?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l 현암사 l 2만2000원 “당신은 일을 사랑하십니까?” 직업을 소명처...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왜곡된 ‘공정’에 짓눌린 ‘공존’의 상상력을 찾아서 [책&생각]청소노동자 집회에 ‘수업권 침해’ 등‘에브리타임’에 번진 혐오·반지성주의‘사회문제와 공정’ 강의를 계기로청년 세대의 공정담론 두루 톺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책&생각] 새로운 여성 시대 함께한 ‘자기만의 방’호텔 바비즌여성의 독립과 야망, 연대와 해방의 불꽃이 되다폴리나 브렌 지음, 홍한별 옮김 l 니케북스 l 2만4000원 1928년 ...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소방관과 아이 대신 방화범을 살렸습니다 [책&생각]올해 이상문학상 최진영 신작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신냉전이 아니라 강대국 중심의 ‘각자도생’이다 [책&생각]현대 중국, 세계체계 연구해온 사회학자 백승욱신냉전 아닌 얄타체제 중심으로 국제질서 탐구“대안적 세계 질서 없는, 체계의 혼돈이 문제”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