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군에 들어와.' 민기식(1921년생)의 제안에도 신언우는 묵묵부답이었다. 군인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주고보(청주고등보통학교) 친구인 민기식은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다.
"친구야, 군에 들어와." 민기식의 제안에도 신언우는 묵묵부답이었다. 군인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주고보 친구인 민기식은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다. 반면 신언우는 만주의 세무서에 일하다 해방이 되자 귀국했다. 그런 신언우를 만나기 위해 1946년 2월 7일 민기식은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로 찾아왔다.
군대가 정식으로 창설되기 이전 미군정 시절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는 군대에서 초고속 승진이 가능했다. 1946년 소위였던 민기식은 1949년 중령, 1952년에는 소장이 됐다. 3년마다 3~4계급이 승진한 것이다. 이후 민기식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충주비료 사장과 3선의 국회의원도 했다. 한편 청주고보 졸업 후 신언우는 아내 남기정과 함께 만주로 향했다. 하얼빈세무서에 취직한 그는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만주에는 마적단이 들끓었다. 마적단은 집단으로 말을 타고 다니며 민가의 재산을 탈취하고 여성을 강간했다. 신언우의 아들 신창식의 증언에 의하면, 신언우는 마적단에게도 세금을 받아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만큼 원칙에 충실하게 일을 처리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신언우 가족이 아산군 온양으로 이사한 지 1년여 만이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신언우는 아들을 천안 고모 집으로 피난보냈다. 10월 12일에 아들을 데려오며 집 바로 옆 온양지서를 지날 때였다."신언우씨, 잠깐만 봅시다""무슨 일이십니까?""잠깐이면 됩니다" 사복 형사가 아버지를 연행하는데 소년 신창식은 지서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밭에 나가 김장배추 벌레를 잡으려고 하는데 온양경찰서로부터 사람들을 실은 트럭이 돌장원 입구로 왔습니다. 우리 집이 바로 길옆이니까 보았습니다.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호송하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모자들을 쓰고 있었습니다.
온양지서장은 경주김씨에게"당신은 돌아가시오"라고 했지만 김씨는"나는 죽어도 시어머니와 같이 죽을 것이고, 살아도 같이 살 겁니다"라고 했다. 결국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시신은 온양읍 곡교천변에서 발견됐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꼭 껴안은 채였다.청주고보 13회 졸업생 민기식, 신언우, 오해균은 해방과 한국전쟁기에 각각 다른 길을 걸었다. 앞서 보았듯 신언우는 청주고보 졸업 이후 만주 하얼빈에서 세무서에 다녔고 귀국해 운수업에 종사했다. 이후 1949년 충남 온양으로 이사해 한국전쟁기 부역혐의로 불법적인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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