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투쟁, 기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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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공간에 스민다]

기억은 공간을 통해 살아간다. 사회를 뒤흔든 비극적인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곳에는 오랫동안 특정 기억이 강하게 남는다. 반복되는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너무 많은 생명이 떠나는 모습을, 그리고 국가가 외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기억공간은 특정 기억을 형상화해 힘을 싣는다. 기념관, 박물관, 기억교실, 기억공원과 같이 안정된 기억공간이나 분향소, 천막과 같이 일시적인 기억공간은 모두 특정 장소에 특정 의미를 부여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 연관된 사연이 있는 곳에서 그 사건이 주는 의미와 가치가 살아난다.

2차 세계대전 후 떠오른 탈식민주의 시각은 이를 비판했다. 서구, 백인,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등의 기준에서 표준적이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뜻하는 듯한 ‘역사’보다 개인의 경험과 해석을 존중하는 ‘기억’이란 용어를 쓰게 됐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는 한편 경제성장은 둔화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앞을 향해서만 전진하던 우리의 발걸음도 느려졌다. 개인의 아픔, 인권, 정체성, 기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국가의 폭력이었고 국가가 지우려고 했던 제주 4.3, 광주 5.18민주화운동 등이 재조명됐다. 아픈 역사를 과거 국가 기념관처럼 획일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기억공간으로 구성해 희생자 개인의 사연과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기억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나마 국가가 책임지는 몸짓으로 여겨졌고 기억공간의 주체도 다양해졌다.기억공간의 주체가 다양해지는 만큼 기억공간의 형성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곳에는 피해자의 아픔과 절규가 있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희망이 있으며, 기억공간 주변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상인 등의 이해관계가 있다. 또한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결정자들의 가치, 정치단체나 이익단체의 주장 등이 첨예하게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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