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36] 국민방위군
▲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의 모습.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간부들의 극심한 부패로 5만~9만 명의 장정들이 굶어죽거나 실종됐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대한민국의 주홍글자'로 평가 받는다. ⓒ 진실화해위원회대한민국이 한국전쟁을 읽어가면서 뼈를 깎는 마음으로 반성해야 할 일의 하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한 언론인은 보도연맹 학살과 함께 국민방위군 사건을 '대한민국의 주홍글자'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후방 예비부대의 창설이 추진됐다. 방위군은 17~40세의 장정 가운데, 이미 전쟁에 동원된 장정들과 학도호국단에 소속되는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장정들을 대상으로 소집하는 예비대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천적으로 정부에서 식량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고, 예산과 식량은 방위군 사령부와 현장 교육대 간부들이 무지막지하게 떼어먹어서 그리된 것이다. 방위군 병사들이 병사나 아사할 지경인데도 대열을 이탈하지 못하고 잡혀 있다가 영양실조와 추위 속에 죽어간 것이다. 국민방위군 사건을 언급했던 사람들이 종종"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다. 사건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학살이라는 비난을 당해도 그게 아니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긴급하지만 부실하게 소집된 예비대 병력이 아사하는 참극의 끝은 국민방위군 사령관 등 고위 간부 다섯의 총살이었다. 그것도 악화된 여론에 떠밀려 단심 군법회의를 무시하고 재심이라는 편법까지 동원해서 극소수만 겨우 처벌한 것이다. 국민방위군 정책을 총괄한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해임됐고, 국민방위군은 창설 다섯 달 만인 1951년 5월 해체되고 말았다.
국민방위군의 예산은 1951년 1~3월분 예산으로 209억830만 원이 책정됐다. 장병을 50만 명으로 잡고 최소한의 식량과 취사연료, 잡비 세 가지 항목만 책정한 것이 전부였다. 사령부는 물론 15개의 단, 49개의 교육대, 본대의 운영비, 장정들의 월급과 피복비, 의료비와 후생비 등은 일체 없었다. 한편 병역법에서는 병역에 편입되기 전의 청년들에 대해 군사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근거로 대한청년단은 각 지부의 간부 720명을 육군보병학교 배속장교교육대에 입교시켰다. 이들은 40일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예비역 소위로 임관했다. 이들은 각 지부에 돌아가 인근 군부대 협조를 받아 대한청년단원들을 훈련시켰다. 대한청년단은 청년을 내세운 정치단체였지만 준군사단체의 성격도 갖게 된 것이다.
1950년 12월 전선이 다시 밀리는 상황에서 창설된 국민방위군은, 조직과 편제와 예산, 실무조직의 구성과 기간요원의 교육훈련과 같은 기본업무는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일사천리는 곧 주먹구구였고 '잡음과 부작용'을 새로운 법과 제도에 이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방위군의 조직구성은 청년방위대의 인적 구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애초에 군 경력이 거의 전무한 대한청년단 배속장교나 청년방위대 장교 출신들에게 벼락 진급을 시켜 관리를 맡겼던 것부터 부실의 원인이 됐다. 사령부 자체가 부정을 일삼았으므로 내부 감시체계마저 마비되어 교육대가 해체될 때까지 부정과 횡령은 전면적으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였다. 국방부는 국회에서 유엔 구호물자는 유엔 중앙구호위원회의 정책상 민간이 아니면 배정할 수 없으며, 국민방위군이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원조물자를 배정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제2국민병에 잘 조치하라는 이승만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3월 중순이 돼서야 귀향이 시작됐다. 그동안 교육대에 구호물자가 즉각 지급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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