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 앞둔 그가 10년 넘게 페북에 매일 글을 올리자 생긴 일 꿈을_안고_사는_청년 페북_인기스타 남해시대 한중봉
희망과 행복을 안고 살았다.땅이 요동치니늙어서 돌아보니 오래도- '노인이 되어'어떤 분인가 싶어 30분가량 그의 페이스북을 정독했다. 그 안에는 아내뿐만 아니라 시, 인생, 가족, 살아가고 있는 경남 남해와 남해사람들과의 소통이 노닐고 있었다.
그중 눈길을 끈 부분이 먼저 떠난 보낸 아내와 그리움이 녹아있는 시 이야기다. 채규남씨의 부인 고 정송자 여사는 13년 전인 2011년 11월 27일 남편 곁을 떠났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8일 만의 벼락이었다. 평생을 서면 회룡에서 보건약방을 운영해 온 그는 스스로를"아내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 말했다. 3남 1녀를 사회적으로 훌륭하게 키웠으나 백년해로할 줄 알았던 아내를 불시에 잃은 상처는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짙어졌다.당신이 고맙습니다.내 유일한 희망입니다.상처는 시를 낳았다. 그는 요즘 시 공부에 빠져 있다. 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시창작번외특강', '영탄법, 대유법, 설의법 등 수사법 뜻', '명시창작십계명' 등 시 공부 관련 자료가 넘친다. 특히 최고령 시인 황금찬 시인을 좋아한다. 채규남씨의 페이스북에는 황금찬 시인의 시도 있다.
젊은 시절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이 있다는 그의 시와 글들은 수려함을 뽐낸다. 89세 나이에 이런 글을 쓴다는 거 자체에, 게으른 젊은이의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황금찬 시인은 그의 꿈에 나타나"95세 되면 자기와 같은 수준의 시인이 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그는"늙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추하게 늙고 싶지 않다"고 한다."추하게 늙고 싶지 않다"는 소망도 시어로 표현했다.채규남씨는 700명이 넘는 친구가 있는 페이스북러다. 2001년부터 남해실버컴퓨터의 선구자 장희종 멘토를 만나 컴퓨터를 배웠고 그 후 페이스북을 알게 된 후 10여년 동안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하지만 저는 추하게 노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