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심각했던 교사부족…'봉급 50% 올리고 무자격자 채용'
[경남 창원교육지원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이에 미군정은 교원 봉급을 대폭 인상했고 자격 미달자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교사 부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등 혼란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5일 학계에 따르면 김상훈 서강대 디지털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서울역사편찬원이 발행하는 학술지 '서울과 역사' 113호에 실은 논문에서 이런 내용으로 미군정 교육 정책과 광복 후 교육 상황을 소개했다.1945년 4월 기준 남한의 중등학교 교사는 한국인이 833명, 일본인이 2천770명으로 일본인이 전체의 약 76%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인이 대거 한반도에서 떠나면서 공백이 생긴 것이다.광복 당시 한국인 교사의 숫자는 1천225명으로 넉 달 전보다 392명 늘어나기는 했으나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같은 기간 학생은 수는 325명에서 300명으로 소폭 줄었을 뿐이다.논문은"일제강점기 일본인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중등 교육정책 때문에 중등교육 경험을 축적한 한국인 교직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레트 부국장은"긴급책으로 각 지방에서 교원 속성 교육을 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능력이 있으면 다소 자격이 부족해도 교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과는 따로 교원과 교수의 월급과 퇴직금을 올리고 그 외 대우를 철저히 개선하여 훌륭한 인재가 교육계로 모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에레트의 발언은 무자격 교사를 채용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며 처우 개선을 통해 교사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표명한 것이었다.또 1947년 8월 9일 자로 공립 초·중등 교원의 봉급을 올리고 대우를 개선했다. 사범학교 출신 8급의 초급은 2천540원, 그 외 초급은 2천500∼2천600원으로 하는 등 기존보다 700∼800원 정도 인상했고 종래 2천100∼2천200원 수준이던 일류학교 교장 봉급은 3천∼3천130원으로 올렸다.결과적으로 기존에 받던 것과 비교하면 약 50% 늘어난 수준이었다고 김 책임연구원은 분석했다.그 결과 광복 당시 1천225명에 그쳤던 한국인 교사는 1948년도에 9배가 넘는 1만1천260명으로 늘었지만, 교육 수요가 확대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교사 부족 문제가 이어졌다.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