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 뉴욕, 말 그대로 ‘영 앤 리치(Young and Rich)’인 2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밴드에선 클라리넷을 연주했습니다. 훤칠하고 잘생겨서 꼼데가르송 패션쇼에 직접 모델로 워킹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표지 모델로도 유명해졌죠. 뉴욕의 한 클럽에서 DJ로도 활동했는데 춤도 잘 춰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1980년대 미국 뉴욕, 말 그대로 ‘영 앤 리치’인 2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밴드에선 클라리넷을 연주했습니다. 훤칠하고 잘생겨서 꼼데가르송 패션쇼에 직접 모델로 워킹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표지 모델로도 유명해졌죠. 뉴욕의 한 클럽에서 DJ로도 활동했는데 춤도 잘 춰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팝의 여왕’ 마돈나는 무명 시절 그의 연인이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3개 국어를 구사해 요즘 연예계에 있다면 활동 무대가 정말 넓었을 겁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문 배우도, 음악가도 아닌 거리의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입니다.
바스키아의 부모는 그가 7살 때 이혼하는데요. 이는 바스키아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아버지와 살게 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커집니다. 그가 13세가 되던 해 어머니 마틸데는 정신병원 입원하며 병원을 전전하게 됩니다. 이후 바스키아는 아버지와 여러 차례 갈등을 겪고 종종 가출했습니다. 바스키아의 초기 작품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대의 비행기가 등장하는 이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의 단순함과 어린 아이와 같은 모티프 묘사가 돋보입니다. 선은 대충 그은 것 같고 글씨는 휘갈겨 썼는데도 세련된 감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바스키아는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신의 작품에 끊임없이 표현했습니다. 불과 40여 년 전인 1980년대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했습니다. 바스키아는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승차 거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죠.이 작품은 흑인 그래피티 예술가 마이클 스튜어트가 지하철역에서 낙서한 혐의로 뉴욕시 교통경찰에 의해 사망한 후 그린 그림입니다. 당시 스튜어트는 백인 경찰 5명에게 죽을 정도로 맞고 사망했습니다. 바스키아는 이 소식을 듣고 “내가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하죠. 그림을 보면 분홍색 얼굴의 경찰관 두 명이 곤봉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맞고 있는 사람을 검은색 그림자로 표현했는데요. 바스키아는 스튜어트 이외에도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번째 자화상 속 바스키아의 머리카락은 메두사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있습니다. 큰 콧구멍과 크게 드러나 있는 치아는 원시적이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네요. 이 그림에서 보이는 얼굴의 강렬함은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아프리카 부족이 사용하는 가면을 연상시킵니다. 원제의 ‘Heel’은 뒤꿈치를 뜻하는 동시에 비행 청소년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권투선수는 승리한 동시에 갈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스키아가 전성기를 누리면서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알고 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바스키아는 놀라운 수준의 성공을 거두는 동안에도 백인 미술상과 컬렉터가 지배하는 미술계의 권력 불균형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바스키아는 독창성이 풍부한 연주자이자 작곡가 찰리 파커에게 특별한 경의를 표했습니다. 파커는 화려한 즉흥 연주가 특징인 비밥의 창시자라고도 불리죠. 작품 속에는 파커가 숨진 날인 1955년 4월 2일과 파커가 죽은 호텔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왕관 표시로 파커를 재즈의 왕으로 기념하며 십자가를 사용해 그를 추모합니다. 명작 패러디로 예술 역사에 들어가다바스키아는 본인이 존경하는 화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을 다녔기 때문에 미술사에 해박했죠. 그는 밀로의 비너스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리면서 “이렇게 예술의 역사에 들어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스키아는 고전을 오마주하면서도 항상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바스키아의 패러디 작품을 나열해보겠습니다.
바스키아는 워홀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았습니다. 동성애자인 워홀이 바스키아에게 푹 빠졌다는 말도 있지만, 이성애자인 바스키아에게 워홀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워홀은 바스키아를 아들처럼 따뜻하게 챙기며 진심으로 위했다고 하죠. 미술계에서 경쟁과 압박, 불안에 시달렸던 바스키아는 워홀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멘토로 여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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