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싸움이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던 배경에는 누군가가 전공을 탈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왜곡된 역사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1950년 7월 육군 헌병대에 의해 총살당한 고 이상규 해군 소령의 차남 이동춘씨는 최근 나온 '진실화해를 위...
"아직 싸움이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던 배경에는 누군가가 전공을 탈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왜곡된 역사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진실화해위는 관련 재판 판결문, 피해자 및 관련자 수용기록, 형사사건부 등을 조사해 이 소령의 근무 시간과 지역 등을 토대로 범죄 사실에 명백한 오류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유족에게 사과와 함께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의 명예회복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여순사건 해군 작전이 종료되었고, 이 소령은 임시 정대 지휘관이 교체되면서 11월 30일 '충무공정' 정장으로 해군 진해 기지로 복귀했다. 이 소령은 실전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함정의 무장을 강화하고 육상 전투를 담당할 육전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실전 보고서'를 작성해 당시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기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12월 초순 관사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이 소령은 방첩대에 의해 연행됐다."정당한 군권을 파괴할 목적으로 '해상인민군'에 가입해 같은 조직 수괴로부터 비밀서신을 수령했다"는 혐의였다.
해군본부 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된 이 소령은 1949년 6월 해안경비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징역 2년으로 감형되어 마산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이 소령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7월 24일 육군 헌병대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그의 나이 31살, 만기 출소를 코앞에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이렇게 아버지를 잃고 부산으로 이사를 한 이씨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다녀왔더니 경찰관이 찾아와 '어디를 갔다 왔느냐'고 물어봤던 기억은 있지만, 다행히 연좌제의 고통을 크게 겪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소령이 세상을 떠난 날을 알지 못했던 가족들은 매년 음력 9월 9일 이 소령의 제사를 지내왔다.
이상규 소령의 군사재판 판결문에는"1948. 10. 22 오전 1시경 진해 해군 영창에 구속 중인 해상인민군 수괴 병조장 이OO로부터 비밀서신을 일등병조 심OO을 통해 수령"했다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 시각 이 소령은 여순사건 진압을 위해 여수·순천 부근 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같은 기록은 와 같은 정부기관이 공식 편찬한 공간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 폭도진압작전기간에 있어서 실전을 통한 경험은 아해군 발전에 적지 않은 참고가 되었으니 당시 임시편대지휘관이었던 이상규 소령이 제출한 실전보고서 중에 다음 몇 가지는 주목되는 바가 있다.3) 통신연락에 있어서 총사령부 기지함정 파장에 동일하므로 통신의 지장이 지대한 파장종별을 삼종이상으로 판정할 필요가 있음.이씨는 특히 이 소령이 역설한 '육전대의 필요성'이 해병대 창설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해병대 창설 최초 제안자에 대해 초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고 신현준 해병 중장과 제6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고 공정식 해병 중장은 각자 본인의 업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나는 해군 함정 4척을 이끌고 출동하여, 우선 여수항 주변 일대를 점령한 다음, 해상으로부터 반란군을 진압하는 임무에 종사하였다. 이 작전이 끝난 뒤, 나는 해군의 상륙 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 즉 해병대 창설의 필요성을 부기한 전투상보를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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