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샘의 맥주실록] 맥주 마니아의 로망, 성 식스투스 수도원을 가다
맙소사,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내가 기대하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베스트블레테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직영 레스토랑 '인 데 브레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직원들은 주문을 받고 음식과 맥주를 나르느라 정신없었고, 출구 옆에 붙어있는 작은 기념품 매장은 맥주를 구매하려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였다.
베스트블레테렌 12 6병이 들어있는 박스가 눈에 띄었다. 베스트블레테렌 12라니,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오늘 이 맥주가 내 손 안에 없다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게 분명했다. 기념품 매장 문을 닫기 전, 간신히 줄을 서 맥주를 구매했다. 더 사고 싶어도 팔지 않는다. 이렇게 콧대가 높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게 바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힘이었다. 베스트블레테렌은 서쪽과 블레테렌이 합쳐진 단어다. 블레테렌은 벨기에 플랑드르 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프랑스 국경과 불과 15km 남짓 떨어져 있다. 이곳에는 전 세계 맥주 마니아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가 있다. 베스트블레테렌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성 식스투스 수도원이다.
허나 전 세계 맥주 마니아가 베스트블레테렌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다른 트라피스트 맥주가 합법적인 유통 채널에서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반면 베스트블레테렌을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수도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 식스투스 수도원은 맥주 유통을 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수입됐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도 잠깐 보였던 적이 있다. 330ml 한 병에 무려 5만 6000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일 만한 가격이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구매했다. 아니, 벨기에 가는 비용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런 일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희귀한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두렵기까지 하다. 이후 가격이 2만 4000원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베스트블레테렌 12는 언제나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맥주였다.
베스트블레테렌은 시그니처 병으로 유명하다. 마치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맥주병에 라벨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맥주 종류는 라벨이 아닌 뚜껑의 색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병마다 라벨이 붙어 있다. 아마 정책이 바뀐 모양이다. 동그란 라벨은 나름 키치 했지만 예쁘지는 않았다. 로고가 어설프게 박힌 라벨이 오히려 맥주의 아우라를 앗아간 듯 보였다. 그토록 원하던 베스트블레테렌에 왔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과도한 이익을 막기 위한 유통 제한과 소량 생산이 오히려 이곳을 더 시장통으로 만들고 있었다. 고즈넉한 수도원을 바라보며 베스트블레테렌 12를 즐기는 상상은 일찌감치 깨졌다. 혁명을 파는 일이 더 부각되고 각광받는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베스트블레테렌에서 체감하다니. 한 편으로는 트라피스트 맥주의 진정성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닫는 기회기도 했다. 소란스러운 베스트블레테렌을 뒤로하고 바삐 버스에 올랐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덩케르크로 가야 했다. 2차 세계 대전 초반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이 펼쳐졌던 덩케르크는 여기서 불과 3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로 익숙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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