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월드컵을 앞두고 FIFA의 이중잣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월 FIFA 총회에서 인판티노 회장이 제안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화해 시도는 팔레스타인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정착촌에서 팔레스타인축구협회 허가 없이 리그를 운영하며 FIFA 정관을 위반했지만, 고작 2억 8천만원의 벌금만 부과...
며칠 뒤면, 북중미월드컵을 직관하러 간다. 숙박과 교통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월드컵 티켓까지 준비를 거의 마치고, 이제 떠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45일간의 여정이 무척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편에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묵직함이 있다.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FIFA의 기만적 평화 포옹 시도 속 가려진 팔레스타인 주권 침해 올해 4월 30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 총회에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축구협회 간 화해를 제안했다. 일종의 '평화의 상징' 연출을 하자는 거였지만, 팔레스타인 축구협회 회장 지브릴 라주브 회장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인판티노 회장은 양측을 따로 포옹한 후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된 현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를 통한 집단학살 속에 상당수의 팔레스타인 경기장 파괴는 물론 선수들 이동이 제한됐다. 반면, 이스라엘축구협회 산하 일부 구단들은 서안지구에서 리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축구협회는 FIFA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이스라엘 측은 아랍계 이스라엘 선수들과 혼합 팀 운영 사례를 통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공존 가능성을 언급하며, '축구와 정치의 분리'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이와 관련해 10년 전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보고서를 게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 C지역 토지 중 99.3%를 정착촌 용도로 활용했지만, 팔레스타인엔 고작 0.7%밖에 배분하지 않았다. 이 땅에 지어진 경기장 출입은 이스라엘 관중들과 선수들에게만 허용되고, 팔레스타인 관중들, 선수들에겐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AD 이스라엘은 정착촌 내 경기장 건설과 관련해 팔레스타인축구협회 측의 허가를 구했을까?
만약 허가를 구했다면, C지역과 관련해 이스라엘 측에 일방적인 토지 배분이 일어날 수 없고, 팔레스타인 선수들과 관중들의 경기장 출입을 원천 차단하는 굴욕적 조건을 팔레스타인축구협회가 승낙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보고서가 증명한 수치적 현실은 압도적이다. 이런 불평등한 현실은 팔레스타인축구협회의 허가 없이 이들의 축구 주권을 이스라엘축구협회 측이 무시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런 주권 침해는 경기장 건설 문제를 넘어선다.
이전 글에도 밝혔듯이 피점령민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허가 없이 이스라엘이 지은 정착촌이기에 제네바 협약 위반인 불법 정착촌이다. 그런 땅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축구 클럽들이 '스포츠 서비스', '어린이를 위한 교육' 등의 선한 의도로 포장한 가면이 불법점령이라는 본질을 가린다고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는 또한 지적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축구협회의 행위는 단순한 축구행정 착오가 아닌 타국 축구협회의 주권을 유린한 거다.
그러니, 회원국 협회가 다른 협회의 영토 내에서 승인 없이 공식 리그를 운영할 수 없다는 내용의 FIFA 정관 제72조 2항을 이스라엘이 위반했다는 팔레스타인축구협회 측의 주장은 법적·도덕적 설득력이 강하다. 여기에 더해 팔레스타인축구협회의 라주브 회장은 회의에서 이스라엘의 국제축구연맹 제명 및 퇴출을 재차 요구했다.
국제축구계에선 이전에도 이 문제를 논의했었다. 작년 UEFA 집행위원회에서 '이스라엘 국제축구연맹 퇴출안' 표결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작년 9월 말에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구상안이 나오는 바람에 이런 움직임은 중단됐다. 게다가 인판티노 회장이 북중미 월드컵과 관련해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에, 이스라엘 축출안을 따를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미 정계 장악한 유대계와 미국의 절대적인 이스라엘 지원 왜 그랬을까? 미국 내부에서 유대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의 선거만 봐도, 최대 유대계 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는 막강 자금력을 동원, 친이스라엘을 표방한 후보는 지원하고, 이스라엘 비판 후보는 철저하게 낙선시키는 로비를 펼친 역사가 있다. 실례로 2024년 대선 당시 가자 지구 휴전과 이스라엘 군사 원조 중단을 요구한 진보 성향 의원들이 유대계 단체의 표적이 돼 낙선됐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이스라엘 비판세력에 대한 심판이 낙선운동의 이유라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 이스라엘 지지가 정치적 생존방식으로 왜 자리 잡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제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미국의 지원은 절대적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수십년 동안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에 상습적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한편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이후엔 미국이 미국산 무기 구매를 조건으로 무려 179억 달러에 달하는 기록적 군사 원조를 이스라엘에 쏟아부었다. 여기에는 이란·러시아·중국 견제를 통한 지정학적 국익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중동 패권 유지와 미국 군수 자본의 배까지 불리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 글로벌 패권을 위해서라면 '인권 유린 방조'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잔혹한 계산서가 여기 숨어 있다. 이런 미국이 올해 북중미월드컵 공동 개최국이다.
월드컵 경기 수도 미국이 전체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캐나다, 멕시코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소파이 스타디움 등 대형 경기장을 많이 보유한 미국에서 들어오는 티켓 판매 수입은 중계권 수입과 함께 FIFA의 거대 수입원 중 하나다. 버드와이저, 맥도날드 등 FIFA의 공식 후원 업체로 나서는 미국 대기업들의 자본 영향력도 막대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식민주의를 통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을 FIFA로부터 제명하자는 팔레스타인축구협회 측 결정을 FIFA가 따랐다면?
이렇게 되면 미국 내부의 강력한 친이스라엘 기류를 자극할 수밖에 없고, 영향력이 막대한 미국 대기업 자본의 이탈은 물론, 북중미월드컵의 상업적 흥행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러시아는 국제대회 참가 무기한 정지, 이스라엘은 벌금형? FIFA의 모순 이런 정치 역학 때문에, 결국 FIFA로선 이스라엘을 회원국에서 제명하는 대신 인종차별적 모욕 방조 등의 이유로 고작 15만 스위스 프랑의 벌금을 이스라엘에 부과하는 걸로, 사실상 갈음했다. 이후에 이스라엘을 FIFA 회원국에서 제명했다는 소식은 현재까지 없다.
반면,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불법침공한 러시아에 대해선 FIFA에서 회원국 제명까지는 아니었지만, 대표팀과 클럽팀의 국제대회 참가를 금지했다. 이런 FIFA의 행보는 자기모순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의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당시 카타르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러시아와 치르는 경기를 거부하겠다고 나온 유럽 국가들이 12개국이었고, 이 수는 18개국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FIFA에서 행정적 위기에 직면했단다. 그렇다면 규정대로 경기에 불참하는 국가에 몰수패를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월드컵 흥행과 수익에 직격탄을 맞으니 FIFA로선 러시아 한 팀의 국제대회 참가 금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여지가 농후하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미국은 물론 유럽 등 서방세계의 견고한 동맹국인 게 현실이라,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 국제사회 여론이 악화돼 서방 내부 기류가 조금은 변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집단학살 종식을 이끌어가는 것엔 역부족이다. 결국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란 FIFA의 고결한 원칙이 이스라엘에 정말로 적용됐다면, 과거 러시아, 남아공의 사례에도 동등하게 적용됐어야 한다.
이 원칙대로라면 전쟁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지 않은 러시아와 남아공 축구 선수들 역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FIFA는 러시아와 남아공엔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 내 유대계의 강력한 로비, 중동 패권 야망이 있는 미국과 그 야망을 지탱하는 이스라엘의 국익이 만들어내는 잔혹한 계산기 속에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란 원칙은 철저히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서방 세계의 맹목적인 이스라엘 동맹 기류 역시 이에 한몫한다.
이 거대한 모순 하에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인종차별과 집단학살, 식민주의를 통한 아파르트헤이트의 본질까지 가려지게 된다. 이게 FIFA가 말하는 공정인가? 힘과 국제정치, 거대 자본의 이해 관계와 역학 속에 FIFA가 내세우는 구호인 '인종차별 반대'은 실질적이 아닌 허공 속의 정치적 수사에 가까운,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밴쿠버 총회에서 인판티노가 보여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기만적 강제화해 시도는 이런 현실의 민낯이 극명하게 드러난 촌극이었다.
'인종차별 반대'란 허울 좋은 FIFA 구호에 우리가 던질 질문 이제 불과 1주일 뒤면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다. 월드컵의 화려한 막이 오르고 전 세계의 수많은 축구팬들이 환호와 응원을 보낼 텐데, 초록빛 그라운드 위 전자 전광판에 표시되는 '인종차별 반대'란 FIFA의 구호를 과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팬들은 얼마나 될까? 아마 속으로는 그 구호에 대해 씁쓸해하며, 조소하지 않을까? 필자 역시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직관할 예정이지만, 경기장에서 그 구호를 본다면 아마 가슴 깊은 조소를 지우기 어려울 듯하다.
사실상 거대 자본과 강대국의 역학 관계 속에 침묵하는 이 축구장에서 '인종차별 반대'가 정치적 수사를 넘어 온전히 인권의 고귀한 가치로 실현되는 평화로운 지구는 과연 언제 찾아올까? 전 세계 지구촌 축제인 북중미월드컵 앞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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