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느낀대로라면, 30년은 흐른 것 같다. '아, 이게 의료 대란이구나! 이런 게 풍전등화라는 거구나.' 위태로운 시간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동생은 췌장암 말기 환자다. 최근, 암이 늑막으로 전이된 상태에서 폐에 물이 차 ...
위태로운 시간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동생은 췌장암 말기 환자다. 최근, 암이 늑막으로 전이된 상태에서 폐에 물이 차 위험한 상태가 됐다. 그러나 입원을 하려고 하니 병실이 없어서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기저질환이 있어 좀 더 시급한 환자로 분류되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웃픈 상황이었다.기다림 끝에 입원... 회진엔 달랑 교수 한 명
동생과 가족들은 병실에서 검사를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언제 검사하느냐 묻는 환자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알 수 없어요. 차근차근 하고 있으니 기다리세요'라는 게 전부였다. 의료진들은 마음이 급한 환자와 가족들에 비해 느긋해 보이기도 했다.그러던 중, 27일 오후 7시 무렵부터 동생이 토혈을 시작했다. 그래도 병원에 입원 중이라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계들이 신속하게 부착됐다. 그리고 당직의 한 사람이 다녀갔다. 초저녁 시간인데도 그는 몹시 힘들어 보였다. 의료대란은 환자와 보호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처방은 수혈과 피검사였다. 동생은 혈액을 3봉지 수혈하는 동안 혈변으로 다 쏟아내면서 ECG 뚫어지게 주시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전공의가 없어, 위중한 환자들만 받아주는 대학병원의 응급체계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심각성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었다.'나는 왜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 했던가, 내 자식들은 왜 하나도 의사가 되지 못 했을까...' 의료대란은 애꿎은 자식에게까지 불똥이 튄다.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태의 원인을 내 안으로 쓸어 담는 고질병이다. 말로만 듣던 의료대란의 광풍은 멈출 기미조차 없어 보이는데, 내가 처한 현실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그런데, 그래도 대학병원을 먹여 살린다는 회진에 교수가 달랑 혼자다. 회진 온 교수는 간밤에 환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모르는 눈치다. 보호자의 호소로 겨우 '간밤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를 알아차린다.
그러나, 분명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아니다. 그가 다녀간 다음에도 응급시술보다 위급 상황에 대한 여러 동의서 작성이 먼저였다. 필요한 절차임을 알지만, 그게 꼭 환자의 가족들에겐 '죽음 준비'처럼 여겨졌다.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둥, 중중 환자실에서 혼자 죽고 싶지 않다는 둥...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가도 생각해야 했으므로 길고 고단한 시간이었다.환자는 죽어가는데, 텅 빈 병동... 이게 말이 되는 걸까전해 들은 사실과는 딴판이다.또 하루가 지났다. 병실은 여전히 텅텅 비어있다.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의료진이 부족해 환자를 입원시켜도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으니 그저 비워두고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추측을 할 뿐이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병원 밖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부는 의료 대란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저 '원활하다, 문제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원활하지 않다. 입원까지 기다리고, 필요한 검사도 기다리고, 수술도 기다리고, …다 기다려야만 겨우 순번을 받을 수 있다. 죽음이 코앞이라면 그 기다림 앞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어느 여당 인사의 말이 생각났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인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주권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없었으므로 8월 15일은 건국일이란다. 인용하기에도 민망한 말이라 잠시 주저해 보지만 그럼 지금은 국민이 있는가 묻고 싶다. 국민이 없는 의료정책을 펼치는 이 시국에 과연 나라가 존재하는가?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췌장암 말기' 은퇴 감독 위한 리버풀의 선물, 그게 마지막일 줄스웨덴 출신의 축구계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별세했다. 영국 BBC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에릭손 감독이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에릭손 감독은 지난 1월 췌장암 말기 진단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바 있다. 올해 초 자신의 축구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해 '남은 인생이 1년 정도인 ...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윤 대통령 발언 전두환 대통령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강조해 온 '반국가 세력과의 대결'과 관련해 야당이 공영방송 장악, 뉴라이트 인사 발탁,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 등 국정 운영에 얽힌 이들을 거론하며 '이들이 진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오전 당 원...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주담대 받으러 부산 다녀올게”...다급해진 수요자들 ‘이곳’ 몰렸다가산금리 22차례 올린 시중은행 8월 말 기준 3.65~6.05%로 올라가 상호금융 특판에 시중銀보다 낮기도 지방銀 “수요몰려 다른 영업점으로”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일본 재벌들이 두려워하던 청년의 업적[독립운동가외전] 일제 말기 대표적인 항일 조직 '경성콤그룹' 이끈 김삼룡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시민·환자단체들 “의사·정부, 환자 볼모로 대치…피가 마른다”시민사회계가 의사들의 휴진 계획 철회와 정부의 의료공백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 육성·배치를 시장 논리에만 맡기는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40여개 시민사회·환자단체는 26일 국회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의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의협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시 환자-의사 간 신뢰 훼손할 것'(종합)(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대한의사협회(의협)는 23일 코로나19 환자 증가 등으로 응급실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추석 연휴에 응급실이 연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