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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허연 늙은이가 무슨' 그래도 92세 엄마와 함께 본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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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허연 늙은이가 무슨' 그래도 92세 엄마와 함께 본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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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엄마를 모시고 연극 '내 엄마의 장례식: 더 쇼'를 관람한 딸의 이야기. 처음엔 '머리 허연 늙은이가 무슨 연극을 보냐'며 거부하던 엄마는 공연장에서 젊은 관객들과 동등하게 웃고 울며 존재감을 되찾았다. 극 중 딸이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화려한 쇼를 포기하는 장면은 현실의 딸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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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아무것도 아니여. " 얼마 전에 엄마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네 외할아버지 얘기여. 방에 홀로 누워 계시는데, 누군가 방문을 열어보더니 '아무도 없네' 하면서 문 닫고 나가더래.

" AD 그 말을 하실 때 엄마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존재는 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 외할아버지를 회상하셨나 보다. 노년의 쓸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오남매는 서로 무언의 약속을 했다.

어떤 경우가 됐든 집안의 중심에 엄마를 세워두고 우리는 엄마 주위를 빙 둘러 에워싸자고. 또 한 가지는 엄마의 총기가 좋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내어 드리자고. 이런 약속 덕분에 치밀한 계획은 없어도 각자 나름대로 엄마와 좋은 시간 갖고 있다. 문화 생활이란 게 없던 엄마의 삶 2026년 어버이날, 엄마의 문화 생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다.

과연 엄마한테 문화 생활이란 게 있었던가. 그저 한평생 자식 걱정이라는 거대한 숙명 안에서만 살아오셨다. 옷이나 현금을 선물로 드려도 좋겠으나 올해는 아주 특별한 외출을 떠올렸다. 뒷전으로 물러나기에는 아직 아깝기만 한 엄마를 극장으로 모시고 싶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마곡 LG아트센터에서 좋은 연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내 엄마의 장례식: 더 쇼'를 보여드리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엄마를 돌봐드리러 미국에서 직장을 휴직하고 들어온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엄마 모시고 연극 한 편 보는 게 어때? " 나와 사고 방식이 비슷한 동생은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엄마가 손사래를 치셨다. 우리가 주고받는 페이스 톡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엄마가 끼어들었다.

"난 안 갈란다. 너희끼리나 다녀와.

" "엄마,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해야 머리가 녹슬지 않아. " 엄마는 쓸데 없는 소리 말라는 말로 내 입을 막으셨다. "머리 허연 늙은이가 무슨 연극을 본다니? 남들이 웃겠다.

" 절대 안 간다고 강조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식들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우리 엄마 특유의 '뒷걸음질'이었다. 동생이 왜 하필 죽음을 다룬 연극이냐고 묻길래, 장례식에 대해 엄마와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죽음이라는 낱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불효인 것만 같아서. 아버지는 삶의 끝자락에서 연명 치료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가셨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엄마는 절대 자신은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늘 당부해오셨다. 언제부턴가 '죽음'이나 '장례'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굳이 숨길 필요 없는 집안 분위기로 바뀌었다.

"숨쉬기 답답한 납골당은 말고 산에 훌훌 뿌려다오. " 구체적인 유언도 이미 마친 상태이다. 엄마는 혹시 앓게 되더라도 요양원에 가는 건 싫고 그냥 집에 있고 싶다는 말씀도 분명히 하셨다. 비단 우리 엄마뿐이랴.

내가 살던 집에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을 건 모든 이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엄마가 매일 아침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며 기도하는 이유도 편안히 눈 감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뜻이다. 잠들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는 엄마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매를 하고 얼른 엄마 집으로 달려가 셋이 LG아트센터로 갔다.

연극은 U+스테이지 소극장에서 했다. 마당 놀이도 아닌데 360도 원형으로 무대를 배치하다니. 독특하면서도 신선하게 보였다. 좌석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어느 자리에서 보건 배우와 소통이 잘 이루어질 듯했다.

맨 앞 열 가운데에 엄마를 앉히고 우리는 양쪽에서 엄마를 보좌하듯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음악과 함께 세 명의 배우가 무대를 돌며 관객과 눈을 맞췄다. 엄마 역을 맡은 배우가 엄마를 향해 춤추듯 사뿐한 걸음으로 달려오더니 손을 잡고 흔들었다. 비교적 젊은 층의 관객 중에서 우리 세 모녀는 배우의 시선을 끌고도 남았을 것이다.

머리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올라앉은 관객은 엄마가 유일했으니까. 엄마를 열렬하게 환영해준 배우의 넉넉한 배려심에 마음이 놓이면서 편안해졌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한 오늘 딸 '애비게일'은 극작가로서 엄마의 장례 비용 4000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돈줄이 막힌 딸은 엄마의 죽음을 '쇼'로 기획하자는 연출가의 말에 혹한다.

슬픔을 팔아 돈을 벌어야만 하는 현실은 블랙 코미디와 같았다. 극 중 연출가는 흥행을 위해 엄마의 죽음을 더욱 자극적으로 묘사하도록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빈민가에서 살던 엄마와의 추억까지 왜곡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화려한 장례식을 거행할 것인가, 엄마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것인가.

계속되는 갈등 속에 죽은 엄마가 나타나 딸의 의식을 일깨워 준다.

"네가 어떤 장례식을 해주든 나는 몰라. 이미 죽었잖아. 너는 너의 주관을 결코 잃어서는 안 돼.

" 그 대사가 객석의 어둠을 뚫고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92세 관객인 엄마는 저 무대 위의 엄마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평생 자신은 버리고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온 우리 엄마의 존엄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깎였을까. 앞으로 엄마의 존엄성을 되살려드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웃고 울다 보니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배우들의 열연에 만족해 하는 표정을 짓는 엄마를 보자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젊은 관객들 틈에 동등한 자격으로 앉아 손뼉 치면서 큰소리로 웃고 슬퍼했다. .

우리는 주차장에서 엄마 역을 한 배우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배우가 맞은 편의 우리를 알아보더니 반갑게 달려와 엄마의 두 손을 꼭 잡는 게 아닌가.

"어머니, 연극은 이해가 좀 되시던가요? " 살뜰한 표정의 그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의 입에서 자연스레"그럼유"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연세가 아흔둘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그녀의 눈에 금방 물기가 고였다.

"제가 어머님을 뵙고, 저희 엄마 생각이 나서 공연 중에 더 많이 울었어요. " 현실의 엄마와 극중의 엄마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오래도록 서로를 칭찬해주기 바빴다. "배우님이 어쩌면 그리도 엄마 역할을 잘허신대유. " "어머님이 어쩌면 이리 건강하신가요?

" 건강의 비결이 뭐냐고 묻자 엄마는 갑자기 자식들이 잘해주어서 그렇다며 우리를 바라보셨다. 큭, 하고 웃음이 나왔다. 배우 앞에서도 수줍어하지 않고 당당하게 감정 표현을 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조금 놀랐다. 동생의 제안으로 우리 넷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내오던 사이처럼 사진 몇 컷을 찍고 헤어졌다.

그녀는 엄마한테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겼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면서 배우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셨다.

"꼭 성공허슈. " 이런 엄마를 누가 늙었다고 말하리. 오늘 연극 속 주인공은 엄마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현실 속의 나는 연극 나들이를 통해 엄마의 '존재'를 확인했다.

요즘 92세 노모와 노는 재미에 빠져 있던 중 '엄마의 장례식'이라는 연극을 선택한 오늘이 최고다. 연극을 계기로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열렬히 '삶'에 대해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연극 는 마곡에 위치한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합니다. 5월 10일까지 진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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