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2] 이념·종교·사상의 차이를 넘어 하나로 뭉친 사람들
1920년 6월 봉오동과 10월 청산리에서 우리 독립군의 만세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독립 영웅들은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지 10년 만에 현대식 무기를 갖춘 독립군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 군대로 일컬어지던 일본군에 용감하게 맞섰고 연달아 이겼습니다. 봉오동과 청산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 917호에 잠들어 계십니다.장군은 처음에 의병 활동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현재 함경남도와 양강도 사이 고갯길인 후치령에서 홍범도와 의병들은 화승총을 쥐고 일본군을 격파했습니다. 장군은 이후 어려워진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기와 탄약, 그리고 동료를 모았습니다. 마침내 군대를 만들어 독립전쟁에 나섰습니다.
당시 차도선 장군은 나이가 44세였고, 홍범도 장군이 39세였는데요. 나이가 많은 차도선 장군이 도대장, 홍범도 장군이 부대장을 맡았습니다. 봉기 다음날인 16일 안산면의 친일파였던 주도익 면장을 처단하면서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1월 22일에 후치령에서 일본군과 순사 10여 명을 물리쳤고, 11월 24일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몰려온 북청수비대 역시 격퇴합니다. 당시 홍범도 장군의 아내 역시 일본군에게 끌려왔습니다. 일본군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도록 협박했는데요. 장군이 투항하도록 요구하는 편지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이를 뿌리치며 혀를 깨물었습니다.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합니다.
하지만 일제는 휴전 약속을 어기고 차도선 장군을 감금했습니다. 부대원 전원은 무장 해제되었습니다. 일본군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안 차도선 장군은 뒤늦게 후회하며 옥에 갇힙니다.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던 차도선 장군은 1908년 5월 7일 일본군 감시망을 뚫고 옥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는 홍범도 장군을 찾아가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칩니다. 그는 대장 직위를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며 무장투쟁에 다시 나섰습니다. 이런 차도선 장군과 관련해 독립유공자 가짜 후손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과 수교가 맺어진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중국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유해를 국내로 들여오는 사업을 추진해 1995년 6월 23일 차도선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됩니다. 당시 안장식에는 차도선 장군 후손이 아닌 엉뚱한 인물이 유족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은퇴한 세무공무원이었던 연안 차씨 종친회 사무총장 차 모 씨가 족보를 위변조해서 후손으로 등록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진짜 후손들이 중국과 북한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 허점을 노린 시도였습니다.
이때 홍범도 장군과 함께 대한독립군에 소속되어 함께 싸운 동료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먼저 독립유공자 1묘역 127호에 김희백 애국지사가 있습니다. 1899년 10월 17일 평안남도 대동군 율리면 장율리에서 태어나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지사의 조부는 가족을 이끌고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은진 중학교와 명신 여자중학교를 설립해 교육 운동을 이끌던 지사는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했다가 일제의 감시가 심해 북간도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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