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확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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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입니다. 지난주 허스토리는 오전 5시가 되어서야 일단락된 개표 결과를 본 뒤, 곧바로 발송하느라 20대 대선 결과에 대해 충분히 담지 못했어요. 이에 일주일이 지난 지금, 조금 늦었을지 몰라도 지난 선거가 내포하고 있는 민심을 '젠더 관점'으로 촘촘하게 분석하려 합니다. 그에 앞서 주요 외신은 이번 대선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해외 언론은 이번 대선을 '젠더 전쟁'으로 규정했습니다. 미국 타임지는"어떻게 윤석열은 안티 페미니스트의 백래시를 이용해 당선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대선 소식을 전했고, 가디언, 블룸버그 등 영미권의 여러 외신은 윤석열 당선인을 '안티 페미니즘'을 활용하여 당선되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지, 함께 차근차근 살펴볼까요.① 전례 없는 '여성 배제 선거'지난해 4월 보궐선거 이후로 '이대남'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를 집어삼켰습니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72.5%가 당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것을 두고 '20대 남성의 보수화'라는 분석에 급격하게 힘이 실렸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이대남'이라는 집단을 향한 러브콜을 잇따라 보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보수 정치인들은 '여성 할당제 폐지' '남성 혐오를 내포하고 있다는 집게 손가락 표현' 등 진위 여부를 따져보면 허수아비에 가까운 주장을 여과 없이 공론장에 옮겼습니다. 특정 집단을 '세대'로 뭉뚱그려 분석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이대남 현상'에 과한 의미를 부여해 마치 유효한 담론인 것처럼 확산시켰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허스토리는 여러 차례 짚은 바 있어요.그로부터 1년 뒤, 20대 여성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선거 기간 내내 20대 여성 유권자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부동층'이었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성평등에 역행하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국민의힘이 선택지가 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지자체장의 권력형 성범죄'와 '피해호소인' 망언 등으로 더불어민주당도 대안이 될 수 없었죠.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20대 여성 15.1%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 '제3의'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 것만 봐도 이 같은 갈 곳 없는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재명 전 후보의 적극적인 여심 공략에도 불구하고, 올 1월까지만 해도 20대 여성 유권자는 좀처럼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표처럼 말이에요.전례 없는 '여성 배제 선거'가 이뤄진 20대 대선에서 '최후의 부동층'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보여준 막판 표심은 이런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명확히 보여줬는데요. 1월까지만 해도 요지부동이던 20대 여성의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2일, 선거 전 마지막으로 공표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이 전 후보는 20대 여성 지지도에서 39.1%를 얻었지만 실제 출구조사에서는 58%를 기록했습니다. 윤석열 당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26.7%를 얻고 출구조사에서는 더 높았지만, 이는 오히려 단일화 전 안철수 전 후보의 16.0% 지지율을 모두 흡수하지 못한 수치입니다.② '20대 여성도 유권자다!' 요동친 엿새여론조사 결과를 볼 수 없었던 미공표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음을 바꾸기에 엿새는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겁니다. 윤 당선인은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짧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립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강화' 등 기존의 의견을 반복하는 이미지였습니다. 여성을 향한 설득과 설명의 언어는 없었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7일 CBS 라디오에서"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 온라인에서는 보일 수 있겠으나 실제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하는 등 계속해서 20대 여성 유권자에게 모멸감을 안깁니다.민주당은 집중적으로 '여심 공략'에 나섰습니다.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으로 N번방 성착취 범죄를 세상에 알린 박지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다른 이슈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20대 여성들이 즉각 반응했습니다. 지난 4일 박 부위원장이 처음 마스크를 벗고 이 전 후보 방송 찬조 연설에 나선 순간,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동시에 '페미니스트 후보'를 표방했던 심상정 전 정의당 후보는 막판 양당 결집세에 고배를 마셨습니다. 2017년 대선 당시 얻은 6.17%에 못 미치는 2.37%를 득표하며 정의당은 존립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20대 여성 다수가 '젠더 갈라치기'에 나선 윤 당선인 견제를 위해 이 전 후보에 '전략적 투표'를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쉬운 득표였지만, 개표 직후 심 전 후보에게 약 12억 원의 후원금이 쏟아졌습니다.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보성향 여성 유권자들이 '지못미 후원금'으로 마음을 대신한 것으로 보입니다.물론 개별 유권자가 한 표를 던지는 데에는 무척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칩니다. 학력, 계급, 가치관, 지역, 노동 형태 등 말이죠. 하지만 이념, 세대, 지역 갈등이 옅어진 이번 선거에서 '젠더'는 특히 20대 유권자에게 있어서는 전선을 이루는 중요한 균열이었습니다. 같은 세대 내 확연히 다른 성별 표심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기존 여론조사보다 압도적인 수치로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존재감을 보여줬다"면서도"이 전 후보를 지지하고 그의 정책을 옹호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의힘의 '젠더 갈라치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이준석식 혐오 정치'에 철퇴를 놓기 위한 것일 뿐, 앞으로도 이들이 계속해서 민주당과 같은 배를 탈지는 불분명하다는 의미입니다.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③ 대선, 그 후 일주일대선 이후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5년 만의 정권 교체'는 처음입니다. 정치권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0.73%포인트 차이의 아슬아슬한 결과에 승자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선거 과정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과연 이준석 대표의 '젠더 갈라치기'가 유효했느냐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대 남성 유권자의 민주당 이탈'은 2019년에도 조짐을 보였던 현상으로, 실제 국민의힘이 얻은 20대 남성의 마음에 '이준석 효과'가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물론 효과와 무관하게, 반드시 사라져야 할 '나쁜 정치'임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그간 한국 사회에 퍼뜨린 혐오의 씨앗을 거두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마 책임 있고 성숙한 여당의 모습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10일 당선인사 겸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은"젠더·성별로 갈라치기를 한 적이 없다"며"남녀 문제는 집합적인 평등보다 개별적인 불공정 사안에 대해 국가가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이수정 교수 등 국민의힘 인사들이 이 같은 입장에 힘을 싣습니다.180석 거대 여당에서 야당의 처지가 된 민주당은 지도부 총사퇴 이후 비상대책위 체제로 6월 지방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단연 화제가 된 소식은 박지현 부위원장이 공동비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하며 투톱 사령탑에 오른 것입니다. 기대와 우려는 상존합니다. 참신하고 젊은 인물이 칼자루를 쥐는 것을 쇄신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동시에 청년들로 하여금 '공정성 논란'을 재현할 불씨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15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비대위원장은"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4선, 5선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여자인 것과 나이가 젊은 것은 이 나라를 바꾸는 데 상관없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재확인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직원이 이동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④ 여성가족부의 운명은?"여가부 폐지되면 전 어쩌죠?"정치권의 셈법으로 인한 유탄은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약자와 청소년들이 맞게 됩니다. '여가부 폐지'라는 당선인 공약 앞에, 여가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취약계층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것인데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조직 7개 분과에서 여성 분과가 빠지면서, 부처의 존폐를 두고 여가부 공무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여가부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윤 당선인은 연일 '여가부 폐지'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13일 기자회견에서는"여가부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강한 표현으로 쐐기를 박았습니다. 여성·지역 할당 관행 역시 '자리 나눠 먹기'로 규정하며, '능력주의'에 입각한 내각 구성 방침을 세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30%룰'도 폐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가부의 시작은 1995년 유엔이 각 나라마다 여성정책 전담 국가기구를 설치하라고 권고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부처로 출범했습니다. 세계 191개국에 여가부처럼 여성정책을 전담하고 차별을 시정하는 국가기구가 있는데요. 이 많은 나라 중 우리나라의 여가부만 콕 집어 사라질 정도로 우리 사회의 성차별, 정말 개선된 걸까요. '여가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확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당선인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여가부 폐지' 논쟁은 거센 백래시의 전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의 성평등이 조금도 후퇴하지 않도록 허스토리가 계속해서 지켜보겠습니다.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페미니즘 페미니즘에 대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주장을 명쾌하면서도 정교하게 정리하는 책. 깊이와 너비를 두루 갖춰 페미니즘에 대한 입문서로도, 복습서로도 손색이 없다.이 책, 정말 짧습니다! 그리고 얇습니다! 그런데 178쪽이라는 분량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깊고 체계적으로 페미니즘이 다루고 있는 논쟁과 역사를 정리해요. 이따금 페미니즘에 입문하려는 친구들이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 정작 무슨 책을 '첫 시작'으로 권할 수 있을까 고민이었는데요.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책이야말로 입문서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은 페미니즘의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지배, 권리, 일, 여성성, 성, 문화, 미래라는 7가지 키워드로 페미니즘의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해 설명합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과 여러 사상가의 말, 역사적으로 무수한 정치 조직 및 운동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가 페미니즘의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모여 페미니즘을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종류의 페미니즘이 존재하고, 다양한 논의들이 분출되지만 책이 설명하는 페미니즘의 두 가지 근본 믿음은 이렇습니다. ① 현재 여성은 사회에서 예속 상태에 있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겪고 체계적 불이익을 받는다. ② 여성의 예속은 불가피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통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마리 시어는"페미니즘은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을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휴머니즘이 맞습니다. 하지만 인종 차별 철폐 구호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휴머니즘으로 둔갑했을 때,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그들의 목소리는 지워졌습니다. 발화자의 의도에 따라"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맞을 수도, 혹은 '페미니즘 지우기'가 될 수도 있는 이유입니다. 이 얇고 단단한 책을 윤석열 당선인의 페미니즘 입문을 위해 추천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성숙한 이해로 말미암아, 새로운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을 타파하는 데에 큰 획을 긋게 되길 바랍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2년 3월 17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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